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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붉은 꿈은 펄펄하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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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붉은 꿈은 펄펄하게 살아 있다

입력
2006.06.0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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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풍 속에서 붉은색은 한국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레드 마케팅이란 제목의 기사(한국일보 5월 15일자)가 전한 바와 같이 거리엔 빨간 옷차림이, 정치판에선 적색 넥타이가 유행이다. 오렌지 주스가 빨간색으로 나올 만큼 상품은 빨강을 다투고 있다. 냉전시기 적색에 대해 쌓여갔던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되돌아볼 때 세월의 편차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 월드컵은 '우리' 정신의 축제

이런 변화를 생각하면 월드컵은 풍요한 정신적 축제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축구장은 상징적 기호들이 빨려 들어갔다 빅뱅을 일으키는 어떤 블랙홀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쏟아지는 것은 새로운 기호들만이 아니다. 거기서 터져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개인과 개인을 하나로 묶는 신비한 결속력이다. 오늘날 그 어떤 종교나 정치적 이념이 이 축구 행사만큼 강력한 '팀 스피릿'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정신은 보통 개인의 심리적 내면성을 의미하지만 '민족정신'이나 '시대정신' 등과 같은 말에서는 공동체 단위의 내면적 역량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인들을 하나의 인륜적 울타리 안에 모으고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을 조형하는 초개인적 주체성이 특히 헤겔적 의미의 정신이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신화와 종교가, 근대 사회에서는 정치경제학과 문학이 그런 공동체 정신을 지키는 수호자였다.

그러나 근대적 정치경제학이 이루어놓은 사회는 결국 시장사회이다. 여기서는 인간관계가 개인의 이익에 기초한 계약관계로 축소된다. 돈 거래의 규범에 따르는 계약사회에서는 개인들 간의 정서적 유대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인륜적 풍속이 메말라버리는 모래알 사회가 근대화의 필연적 귀결이다.

축구를 비롯한 현대 스포츠가 대중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이런 사막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현상이다. 인간관계가 사막화될수록 정서적 일체감을 이루고자 하는 대중의 욕망은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현대 스포츠는 그런 간절해진 '우리' 지향의 대중적 본능의 필요에 부응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월드컵 축구장은 이제 민족 단위를 넘어 인류 전체를 하나로 묶을 듯한 위대한 정신의 탄생지로 바뀌었다. '세계정신'을 생산하는 숭고한 성전의 위용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2002 한일월드컵의 슬로건 '꿈★은 이루어진다'의 절묘한 의미도 이 점에서부터 새겨야 할 것이다. 그냥 꿈이 아니라 별이 달린 꿈. 그것은 이념, 지역, 계층, 세대 간의 갈등에서 빚어진 사회적 분열, 산업화 과정에서 방관해야 했던 개인주의의 심화와 미풍양속의 파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상실한 미래에 대한 자신감 등을 배경으로 한국인의 마음 속에 이미 부피와 색깔을 획득한 염원이었다. 당시 한국인은 개인적인 '나'를 넘어서는 붉은 염원을 초록의 축구장에서 성취하고자 했다. 붉은 것은 대표선수들의 유니폼과 붉은악마의 복장만이 아니라 어떤 이상적인 '우리'를 향한 한국인의 꿈이었다.

● 정치도 붉음의 의미 숙고해야

이 붉은 꿈은 아직도 펄펄하게 살아 있다. 4년 전의 대선과 지난달의 지방자치선거는 이 꿈 없이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선택과 포기라는 일견 상반되고 변덕스러워 보이는 정치적 태도는 일관된 의지의 관철이다. 그것은 모두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 아름다운 공동체로 나아가고자 하는 한국인의 붉은 염원에서 온 것이다.

붉은색은 일견 야성, 충동, 빠름 등의 느낌을 주고 침착성이나 자기 통제력과는 무관한 색으로 비친다. 그러나 괴테는 빨강에서 모든 색을 하나로 응축하는 화학적 결집력을 보았고, 칸딘스키는 무한하되 어떤 목적이나 지향성을 지닌 역동성을 보았다. 작열하는 성숙의 의지와 화합의 욕망을 나타내는 것이 빨강인 것이다. 요즘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은 한국인의 영혼을 물들이고 있는 이 붉음의 깊은 의미를 충분히 숙고해야 할 것이다.

김상환ㆍ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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