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Again) 1995년’
반도체 업계에 D램(수시로 저장과 삭제가 가능한 메모리) 초호황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윈도 95와 정보기술(IT) 발전 등의 영향으로 D램 수요 등이 폭발했던 1995년의 슈퍼 호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 전망이 현실화한다면 환율 하락과 고유가 등으로 허덕이고 있는 한국 경제에는 가뭄 끝에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최근 시장전망 자료에서 올해 D램 시장 규모를 기존 248억1,700만 달러에서 286억8,700만 달러로 15.6% 상향 조정했다. 특히 내년 시장 규모도 239억200만 달러에서 322억1,400만 달러로 34.8%나 올려 잡았다.
이에 앞서 씨티은행도 D램 보고서에서 ‘전세계 D램 시장이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슈퍼 사이클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뒤 올해 D램 매출 전망치를 당초보다 7.3% 올린 291억 달러로, 내년 전망치는 375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보고서는 “윈도 비스타용 그래픽 D램 수요 및 X박스와 PS3 등 새로운 게임용 수요가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반면 공급 측면에선 기업들의 투자 성장이 둔화하고 있어 빡빡한 수요ㆍ공급 상황이 연출되며 가격 강세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도 D램 반도체 중 DDR(더블데이터레이트ㆍ신호 1회에 데이터를 2회 보내 전송 속도를 높인 D램) 및 DDR2 재고가 3월 각각 5.27% 및 4.31% 감소한 것을 예로 들고 있다. 더구나 DDR 재고가 DDR2 재고보다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 가까운 미래에 DDR 공급 부족 상황이 발생, 가격 프리미엄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업황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잇따르고 반도체 업계가 이러한 전망에 고무되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299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2,844억 달러) 중 11%를 차지, 단일 수출 품목으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세계 D램 시장의 32%, 낸드 플래시 메모리 시장의 52%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수출액이 498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7.5%를 차지하고,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08조원(지난해말 기준)으로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655조원)의 16.5%에 해당한다.
현장에서 감지되는 분위기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재의 D램 반도체 시황은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 반면 공급은 제한적이다. DDR의 경우 대다수 업체들이 주력 생산품을 DDR2로 전환함에 따라 이상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DDR2도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경쟁사는 90나노 공정으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게임기에 사용되는 DDR3의 수요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특히 하반기에도 수요 강세와 공급 제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윈도 비스타 호환 PC가 출시되는 데다 대용량 그래픽 처리가 중요한 신형 게임기가 DDR3의 수요를 촉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는 반도체인 낸드 플래시 메모리도 2분기 재고 조정이 마무리 단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디지털카메라 및 MP3 플레이어에 대한 수요가 강세를 띨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프리미엄 노트북 PC에도 낸드 플래시가 공급될 것”이라며 “특히 4기가~8기가 바이트의 고용량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고성능 휴대폰과 내비게이션, PMP(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제품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어 시장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장비의 출하 대비 수주 비율인 BB율(Book to Bill Ratioㆍ주문량/출하량)도 5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4월 북미 반도체 장비의 BB율은 1.11로 전월대비 0.08포인트 상승,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 삼성전자 반도체 경쟁력 원천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경쟁력 원천은 무엇일까.
삼성전자는 1983년 주변의 만류와 회의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D램 사업에 진출 하겠다고 발표한 지 꼭 10년 만인 93년 메모리 반도체 업계 세계 1위에 올랐다. 특히 계속 바뀌던 메모리 반도체 세계 정상의 자리가 삼성전자가 1위에 오른 이후로는 13년간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삼성전자가 이러한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우선 선택과 집중을 들 수 있다. 74년 이건희 회장(당시 동양방송 이사)의 사재 출연으로 출범한 삼성전자는 당시 선진국과 기술격차가 30년이나 됐다. 특히 반도체 사업은 천문학적 투자 집행과 우수한 인재의 확보 여부에 사업의 승패가 갈린다.
삼성은 그룹의 인력과 자금을 반도체 사업에 집중했고, 이 회장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를 돌며 ‘애국심’에 호소했다. 이렇게 귀국한 박사 인력들은 국내 연구진과 함께 ‘사업보국’이란 일념 하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매진, 94년 세계 최초의 256M D램 개발이라는 금자탑을 일궈 냈다.
두 번째 비결은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환경의 변화에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 시켰다는 점이다. 95년 D램 슈퍼 호황 이후 반도체 시장은 내리 3년 역성장을 기록했다. 새로운 블루오션이 필요하던 때 삼성전자는 과감히 플래시 메모리를 선택했다. 특히 경쟁사의 제휴를 뿌리치고 독자 개발의 험한 길을 고집했다. 삼성전자는 2001년 세계 최고 집적도를 가진 1기가 바이트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플래시 메모리 시장은 급성장해 2003년 23억 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엔 100억 달러까지 돌파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성공 배경에는 미래를 볼 줄 아는 최고경영자의 혜안과 과감한 결단 뿐 아니라 애국심과 극일 정신으로 뭉친 연구진의 땀과 노력을 빼 놓을 수 없다”며 “특히 메모리 1위에 오른 뒤 선발 주자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13년간 선두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세계적인 성공사례가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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