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열한 거리’에는 덜 비열한 사람도, 더 비열한 사람도 없다. 각각의 인물들의 덜 비열한 순간과 더 비열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영화는 모든 인물들에게 비열성을 균등 분배하며, 선량한 민주시민인 당신은 조폭과 얼마나 다르냐고 묻는다.
병든 홀어머니와 두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병두(조인성)는 크게 한 건 해 출세할 욕심으로 몸이 달아있는 건달이다. 같은 조직의 ‘형님’을 배신한 후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에게 어느날 조폭에 관한 영화로 ‘대박’을 터뜨려보려는 초등학교 친구 민호(남궁민)가 찾아온다.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먹고 먹히는 조폭들의 생존 몸부림과 그들을 이용해 영화를 만들려는 감독의 남루한 욕망을 교직하며, 파멸을 향한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을 펼쳐보인다.
유 하 감독의 신작 ‘비열한 거리’는 조폭 영화라기보다는 예술가 영화에 가깝다. 조폭 영화의 관습들을 위반하지 않는 이 영화는 조폭을 먹이연쇄의 쳇바퀴에 포획된 일상인의 알레고리로 내세우지만, 이는 ‘초록물고기’나 ‘게임의 법칙’ 같은 영화에서 익히 보아온 것들.
오히려 ‘비열한 거리’가 숱한 조폭 영화들 속에서 고유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영화의 메타드라마적 구조가 갖는 자기성찰적 시선 덕분이다. 감독의 페르소나인 민호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감지되는 유 하 감독의 자기 조소는 조폭이든 예술가든 다를 것 하나 없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키며 영화의 외연을 넓힌다.
유 하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스타에서 배우로의 변곡점을 마련했던 엄정화, 권상우처럼 조인성도 이 영화를 통해 기존의 유약한 이미지를 벗었다. 희번덕거리는 눈빛과 헐떡이는 날숨으로 스크린를 꽉 채운 그의 열정적인 연기는 깊이와는 별개로 크게 칭찬받을 만하다.
‘비열한 거리’는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어 감독 스스로 명명한 ‘조폭성 3부작’의 두번째 영화. 15일 개봉. 18세.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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