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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그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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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그때 그 사람

입력
2006.06.0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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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내 청춘'의 시인 이상희는 분위기 있는 미인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이십대 중반이었는데 프랑스 영화 '남과 여'의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아누크 에메를 연상시켰다. 그녀는 내 첫 인상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신경숙이랑 같이 들어오는데, 웬 거구들인가 했어." 흥! 그래, 너 가냘프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좀 삐졌었다.

한가한 사람들이 문단의 미남미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그녀는 어릴 때도 미모가 출중했을 것이다. 여중시절부터 뒤쫓아 오는 남학생들로 성가셨던 모양인데, 한 남학생을 파출소로 데려간 적도 있다고 한다. 새침한 얼굴의 그녀와 상기된 얼굴의 남학생을 앞에 두고 싱글거렸을 순경 아저씨가 눈에 선하다.

나는 한 번도 남학생이 쫓아온 적이 없다. 예쁘지도 않은 데다 생기 없이 우울해 보여서 그랬을 것이다. 아, 스무 살 무렵, 한 남자가 버스에서 나를 쫓아 내렸던 게 생각난다. 어두컴컴한 길에서 그는 허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뻔뻔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어요." 운전석 옆 엔진에 걸터앉아 심드렁히 옥수수를 뜯어먹고 있던 나를 본 것이다. 내가 발끈 화를 내자 그는 허무하게 발길을 돌려 가버렸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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