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이 7일 임명 제청한 5명의 대법관 후보자에 현직 고위 법관이 예상보다 많은 4명이나 포함됐다. 반면 최소 1명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던 학계 인사는 끝내 배제됐다. 안대희 서울고검장의 발탁이 검찰 출신 강신욱 대법관의 후임 몫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원 법원 내부 인사들로 채운 셈이다.
5명의 제청자가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학계 1명, 검찰 1명은 ‘상수(常數)’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여성인 전수안 법원장이 포함될 경우 정통 고위법관 중에선 2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같은 기대에 비추어 볼 때 이날 제청 내용은 최근 대법관 선임 경향에 비추어 보더라도 다소 의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조직 안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법원 내부의 강력한 요구를 수용한 측면이 강하다. 법관들 사이에선 지난해 11월 사시 21회의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 선임 이후 지나친 기수ㆍ서열 파괴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다. 선배 법관들이 판결한 사건을 후배 대법관이 다시 심리하는 상황에 대해 아직까지 서열이 분명한 법원 조직에서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대법관 제청은 지난 대법관 인사의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인사의 또 하나 특징은 지역 안배이다. 새로 제청된 후보들의 출신 지역은 전북 경북 충북 부산 경남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기존 대법관들을 포함하더라도 대체로 다양한 지역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배경을 이해하더라도 이번 대법관 제청이 사법개혁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내년부터 고등법원에 상고부가 설치될 경우 정책법원으로 거듭나게 될 대법원의 위상을 고려하면 다양성 측면을 중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앞으로 2년 반 동안 대법관 교체가 없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다만 시민단체 등이 추천한 개혁 성향의 이홍훈ㆍ전수안 법원장을 제청한 것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고 고심한 흔적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검찰 출신 1명과 여성을 1명씩 선정한 것은 현재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 라고 밝혔다.
이 대법원장이 인선 과정에서 병역, 도덕성, 재산형성 과정 등을 강도 높게 검증했다고 밝힌 부분도 주목된다. 실제로 유력한 후보 2명이 병역과 재산형성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 배제됐다는 후문이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 대법관 후보 5명 제청자 면면
개혁 성향… 법원 밖서 지지도 높아
이홍훈 서울중앙지법원장
5명의 대법관 제청자 중 유일하게 개혁적인 성향으로 분류된다. 기본권, 소수자를 보호하는 판례를 여러 차례 남겨 참여연대와 법원 노조로부터 추천을 받는 등 법원 밖의 지지도가 높다. 2004년 7월 이후 3차례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을 정도로 법원 내에서 실력과 덕망을 평가받고 있다.
1995년 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피고인의 혐의 중 이적표현물 제작ㆍ배포에 대해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칠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국가보안법 철폐 현수막 설치를 허가했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고교생들의 인격권과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며 CD 제작ㆍ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과로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육군 대위 ▦박옥미씨와 2남2녀 ▦제주지법원장, 수원지법원장 ▦재산 7억6,855만원(장남 고지 거부)
'소리바다' 운영금지 등 知財權 정통
박일환 서울서부지법원장
1998년 특허법원 설립 당시 초대 부장판사를 맡는 등 특허법과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가장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건의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이 뛰어나 재판 도중 변호사가 갈팡질팡하자 대신 핵심을 짚어줬다가 변호사가 그만 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개인간 음악파일 교환 프로그램인 ‘소리바다’의 운영을 금지하도록 해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결정을 내렸다. 반면 20여년 동안이나 상표의 독점적 사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코파이’라는 명칭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고 있는 사람까지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성적 불량으로 학사경고를 3번 받은 대학생이 “제적은 지나치다”며 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학생은 학칙에 따라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현 13명 대법관 중 유일하게 TK(대구ㆍ경북) 출신인 강신욱 대법관이 다음달 퇴임하기 때문에 지역 안배 차원에서 TK 출신인 박 법원장이 지명됐다는 해석도 있다.
▦공군 대위 ▦문성옥씨와 1남1녀 ▦서울고법 부장판사, 제주지법원장 ▦재산 7억8,129만원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역임 '실력파'
김능환 울산지법원장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을 잇따라 역임하는 등 실력파 법관으로 이름이 높다. 법원 내 민사집행법연구회 회장을 지낼 정도로 민사법 권위자로 꼽힌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인 김현장씨가 “보호관찰처분 연장을 취소해 달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고, 서울대 미대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김민수 교수가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 교수의 손을 들어줘 복직의 길을 열어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99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등에 관한 사면 정보를 공개하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해당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안기부 조직과 인원을 공개한 언론 보도에 대해 국가기밀을 근거로 “해당 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정통 엘리트 법관으로 분류되며, 법원 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경기고 출신이다.
▦육군 대위 ▦김문경씨와 2남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재산 4억4,947만원
대통령 동기… 대선자금 수사 명성
안대희 서울고검장
2003~2004년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국민검사’라는 명성을 얻은 대표적인 특별수사통 검사다. 20세 약관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 25세에 ‘최연소 검사’로 임관한 후 대검 중수부 1ㆍ3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 1ㆍ2ㆍ3부장을 모두 역임했다. 저질연탄사건, 서울시 버스회사 비리 사건, 대형 입시학원 비리 사건, 바닷모래 불법채취 사건 등을 파헤치면서 특별수사의 전범을 쌓았다. 소신과 수사 의지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부산고검장으로 재직하면서 법률가들이 수준급으로 평가한‘조세형사법’을 출간, 학구파의 면모를 보였다. 올해 초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에서는 2억5792만원을 신고해 검찰 내 ‘영예의 꼴찌’를 기록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동기(17회)이지만 특별한 개인적 인연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대선자금 수사 당시 성역 없는 수사로 정치권의 원성을 사기도 인사 청문회에서의 공격과 방어가 주목된다.
▦육군 대위 ▦김수연씨와 1남1녀 ▦대검 중수부장, 부산고검장 ▦재산 2억7,392만원(부모 고지 거부)
최고참 여성법관…女인권에 관심
전수안 광주지법원장
여성 법관 중 ‘최고참’이다. 화이트 칼라 범죄와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범죄에 엄정하게 법을 적용해 왔다는 평을 듣는다. 2004년 2월 박창호 전 갑을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 분식회계와 관련해 고등법원에서 실형을 선고한 첫 사례를 남겼고 전 대상그룹 임직원들의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판결문에 임창욱 명예회장의 공모 사실을 명시해 임 회장에 대한 재수사를 이끌어냈다.
고위 법관으로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10월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 전관예우 문제를 지적하며 사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글을 시민단체에 기고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효순, 미선양 추모 촛불집회를 사전 허가 없이 개최한 혐의로 기소된 여중생 범대위 집행위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해 법과 원칙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2004년 7월 최초 여성 대법관 자리를 놓고 김영란 대법관과 막판까지 경합했었다.
▦임상혁(의사)씨와 2남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재산 18억7,341만원(시부모 고지 거부)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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