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대결이 끝나면 결과 해석을 놓고 새로운 대결이 시작된다. 누가 당선되고 어느 정당이 표와 자리를 더 많이 얻었는지는 명확히 판명나지만, 그 결과가 향후 국정 운영과 관련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는 논란거리가 된다. 다른 생각과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자의적 해석을 하며 우겨대기 쉽다.
● 부동산정책 '고수-수정' 논쟁
5ㆍ31 지방선거가 끝난 후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그 짧은 기간에 이번 선거결과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수 많은 논점 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정부가 기존 정책방향을 바꿔야 할 지 아니면 보다 일관되게 고수해야 할 지에 관한 논쟁이다. 한 쪽에선, 여당 참패는 현 정부가 개혁적 정책들을 꺼내만 놓고 보다 일관되고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한데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인식 하에 기존 정책기조의 유지·확대를 주장한다.
다른 한 쪽에선, 여당 참패가 뜻하는 바는 정부의 정책방향이 국민으로부터 거부되었다는 것이므로 빨리 정책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특히 부동산정책과 세제정책이라는 구체적 영역에서 이러한 ‘고수 대 수정’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논쟁의 양 측이 과연 정확한 문제 인식에 대한 노력을 기울인 후에 각자의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 회의가 든다. 선거 결과가 나오고 즉각 주장을 펴기 시작한 점을 볼 때, 양 측이 공히 피상적 관찰에 입각해 자의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선거 결과를 정책방향과 관련해 그렇게 쉽게 해석할 수 있을까? 유권자는 수많은 요인을 고려해 표를 던진 것이고 수많은 유권자의 표가 모여 집합적으로 선거 결과가 나온 것이므로 정책과 관련해 그 방향에 대한 명확한 시사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현 시점의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전반적인 국정 운영의 방향을 어렴풋이 제시받을 수는 있을지라도 구체적 정책내용과 관련해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받을 수는 없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례는 선거 결과로부터 정책 관련의 ‘위임명령’(mandate)을 너무 성급히 찾아내선 곤란하다는 교훈을 준다. 1992년 선거 직후부터 승리에 도취한 그는 미 국민이 진보적 정책을 원한다는 위임명령을 자신에게 주었다는 주장을 하며 정책기조를 상당히 진보적인 쪽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실패로 끝났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반면, 2년 후 중간선거에서 참패해 상하 양원의 다수당을 공화당에 넘겨준 직후엔 클린턴이 좀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경솔히 정책 관련 메시지를 찾기보다는 신중하게 선거 결과를 살펴보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오랜 대화를 거치며 국정을 서서히 중도와 균형 쪽으로 변화해 갔다. 그 결과, 중간선거 참패 후 6년간 클린턴의 업적은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 성급한 변경 보다 與野 대화를
물론 선거 결과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극단적 자세도 바람직하지 않다. 승리한 측이나 패배한 측이나 선거 결과를 보며 자기네의 정책기조에 대한 재점검과 반성을 해야 한다.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대표자 선출 뿐 아니라 국정방향 선택이라는 기능도 수행함을 부인할 순 없다. 특히 패배한 측이 잠시 오도된 국민이 잘못 표를 던져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니 정책기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면 큰일이다.
선거 결과는 중시하되 정책방향과 관련해서는 냄비처럼 들끓지 말고 신중해야 한다. 선거에 졌으니 고치자거나 반대로 제대로 밀어붙이자는 식의 단견에 빠지지 말고, 부동산이든 세제든 정책 하나하나의 공과에 대한 충분한 토의를 거쳐 바꾸거나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 정책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정과정이 과연 내 편 네 편 가르지 않고 독선적이지 않게 대화로써 운영되고 있는가라는 점을 이번 선거가 잘 보여주지 않았나.
임성호ㆍ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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