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헷지’는 인간들에 의해 고립된 숲 속 동물들의 재롱과 우정이 버무려진 가족 영화다. 너구리, 스컹크, 주머니쥐 등의 털이 한 올 한 올 느껴질 정도로 컴퓨터 그래픽이 뛰어난데다 황정민 신동엽 등 스타들의 목소리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면서 떠오른 생각은 “낚였구나” 였다.
‘헷지’ 덕분에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시선을 집중시켰던 보아가 맡은 역할은 주머니쥐 헤더. 원어 버전에서는 팝스타 에이브릴 라빈이 연기를 했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라지만 보아가 연기한 헤더는 조연이라기보다 단역에 가까웠다. 요란스러운 겉포장과 달리 결국 보아와 에이브릴 라빈은 ‘낚시 마케팅’을 위한 얼굴 마담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영화들, 특히 국내 영화들의 흥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럴싸한 포스터나 홍보 문구에 ‘낚이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 완성도를 두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구타유발자들’도 그 중 하나다. 감초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이문식, 오달수가 씩 웃고 있는 포스터와 코믹 잔혹극이라는 문구는 돈 내고 웃고 싶은 관객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영화는 잔혹극에 가깝다. 이 영화에 대한 한 포털사이트의 관객 평점이 9점대에서 5점대로 폭락한 것은 관객들의 배신감을 상징한다.
1월 개봉했던 ‘싸움의 기술’도 ‘낚시질’의 표본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모 청바지 광고를 패러디한 티저 예고편과 백윤식의 우스꽝스러운 말로 채워진 예고편은 코미디영화를 예상케 했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살풍경이 되려 웃음을 달아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기대만큼 웃기지 않습니다’ ‘상업영화가 아닌 작가주의에 입각한 작품입니다’라는 손님 내쫓는, 솔직하기 그지없는 마케팅 전략을 취할 수 없는 영화인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쏟아지는 영화들 속에서 잠시라도 관객들의 시선을 낚아채려면 자극적인 수사를 동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하면 작품에 대한 온당한 평가도 흐리게 하는 법이다. 영화 마케팅도 정직이 최고의 전략이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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