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중계방송에 대한 ‘장외시청권(Public Viewing)’을 둘러싸고 국제축구연맹(FIFA), 대행사의 ‘원칙’과 우리 국민의 ‘정서’ 사이에 충돌이 우려된다.
장외시청권을 독점하고 있는 FIFA 측이 권리침해에 대해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월드컵이 끝난 후 무더기 소송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FIFA 규정에 따르면 경기장 밖의 공공장소에서 2명 이상이 모인 가운데 경기를 방송하려면 사전에 FIFA로부터 장외시청권 허가를 얻어야 한다.
시내의 대형 전광판은 물론, 소규모 영업장에서 이뤄지는 TV 시청까지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월드컵 기간 중 식당과 술집 등에서 손님들에게 허가 없이 경기를 중계방송하면 명백한 규정위반”이라는 것이 FIFA의 입장이다.
FIFA는 이를 막기 위해 이미 국내 대형 로펌에 의뢰해 권리침해 사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FIFA의 국내 권리대행권자인 한국방송협회는 “장외시청권을 보호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이는 국민들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업행위를 위한) 무단 중계와 이에 따른 선의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협회는 2002년 FIFA의 국내 방송 중계권을 2,500만 달러(약 250억원)에 사오면서 국내에서 이뤄지는 장외시청의 경우 한국대표팀 경기와 결승전은 1회에 최고 5,000만원, 기타 경기는 최고 2,000만원을 받기로 했다.
이 돈은 협회의 수입이 된다. 업소의 규모, 시청 목적 등에 따라 차이를 둔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1,000만원은 넘기 때문에 소규모 영업장은 감당하기 힘들다. 실제 이 달 들어 협회에 수백통의 문의전화가 걸려 왔지만 장외시청을 신청한 곳은 아직 한 곳도 없다.
이에 따라 월드컵이 개막하면 전국 도처에서 ‘무허가 월드컵 중계’가 이뤄질 전망이다. 월드컵 경기를 보여달라는 손님들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FIFA나 협회가 마음 먹고 현장 조사를 진행한다면 걸리지 않을 가게가 없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는 규정”이라는 성토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모(37)씨는 “내 가게를 찾은 손님들과 내 TV로 경기를 보는데 무슨 돈을 내라는 말이냐”고 따졌다. 대학생 최재영(25)씨는 “그렇다면 협회는 거리 응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방송에 나온 모든 국민들에게 출연료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외시청권은 월드컵 응원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빌미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미 협회를 통해 FIFA에 비용을 지불한 공중파 방송사, 독일 월드컵 공식후원사인 현대자동차 등이 주최하는 야외 응원에는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야외 응원을 기획하는 단체는 이들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인하대 등 일부 대학과 인천 동구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자발적인 단체응원을 펼치려던 계획이 잇따라 무산됐다.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문재완 교수는 “방송 콘텐츠를 상업적 목적을 위해 가공하지 않는 한 시청하는 장소가 어디인가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