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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160명 중 나만 살아남아" 23년째 전우들 넋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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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160명 중 나만 살아남아" 23년째 전우들 넋 기려

입력
2006.06.0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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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동료 부대원 160명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70대 참전용사가 사재를 들여 전우들의 넋을 기리는 사당을 짓고 23년째 날마다 참배를 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전쟁 당시 백골부대에서 복무했던 최수용(78)씨.

전쟁이 발발한 지 두 달 만인 1950년 8월 울산에서 소총수로 입대한 최씨는 백골부대 진백골연대 6중대에 배치됐고, 최씨의 부대는 같은 해 12월 1일 휴전선을 돌파해 함북 부령을 향해 북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최씨는 이날 새벽 벌어진 치열한 전투 도중 왼쪽 다리에 수류탄 파편상을 입고 치료를 받기 위해 대대본부로 후송돼 작전에서 제외됐다.

최씨는 이튿날 다시 부대에 복귀하려 했지만 이미 전군에 후퇴명령이 내려져 6중대가 보안상의 이유로 무전기를 꺼버려 연락이 안된 데다, 때마침 2㎙가 넘는 폭설이 내려 복귀하지 못하고 다른 부대로 배속됐다.

그로부터 2개월 뒤 부대를 따라 퇴각하던 최씨는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같은 부대 동기를 만나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속해있던 6중대가 함북 성막에서 전투를 하던 중 적군에 포위돼 부대원 전원이 전사했다는 비보였다. 최씨는 추위 속에 고립돼 죽어간 동료들을 생각하며 몇일 동안을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최씨는 이후 전투에서 두 차례나 더 포탄 파편상을 입어 왼쪽 다리를 절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 제대한 최씨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도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은 끝내 떨치지 못했다.

결국 최씨는 1983년 자신이 입대한 곳이자 백골부대 동기 80여명이 모여 고 있는 울산으로 돌아와 자비로 울주군 온산읍 화산리에 1,300평 규모의 ‘백골부대 성역지’와 사당을 짓고 동료들의 위패 160위를 모셨다. 최씨는 이때부터 날마다 사당에 향을 피우고 헌화를 하며 전우들의 넋을 기렸고, 살아남은 입대 동기들과 함께 매년 6월 초에는 위령제를 올려 ‘백골 할아버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며 5년 전부터는 울산시와 울산보훈지청, 백골부대와 지역 군부대도 함께 참여하게 됐으며, 올해는 8일 참전용사와 군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를 가질 예정이다.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씨는 “나라를 위해 꽃다운 젊음을 바친 이들의 죽음이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전우들의 이름을 새겨넣은 번듯한 위령비를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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