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직후 경찰이 박 군의 사망 장소를 조작하려 했다는 구체적 증언이 사건 발생 19년 만에 나왔다.
사건 당시 검안을 맡았던 중앙대 의대 오연상(49) 교수는 6일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박 군은 이미 숨져 있었지만 경찰은 시신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던 중앙대 용산병원 응급실로 옮기려 했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려는 것은 사망 원인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병원에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으라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조사실 바닥은 물에 흥건히 젖어 있었고, 박 군은 복부와 폐에 물이 가득 찬 채 심장박동이 멎어 있었다.
오교수는 사건 이틀 뒤 기자들에게 조사실이 ‘물바다’였다는 사실을 공개, 박 군의 고문치사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일로 오 교수는 검찰과 경찰에 연행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오 교수는 당시 박 군의 고문에 가담했던 경찰들도 고문을 당했을 가능성을 증언했다. 오 교수는 “사건 사흘 뒤 신길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을 때 옆방에서 비명과 함께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당시 나를 조사하던 수사관들로부터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박종철 군을 수사했던 수사관들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고문치사 사실이 밝혀진 뒤 오 교수는 박 군의 시신을 최초로 검안한 민간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의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주변인들과 병원 관계자들까지 그에게 폭언을 일삼는 등 협박이 끊이지 않아 오 교수는 최근까지 언론 노출도 극도로 꺼렸다.
오 교수는 당시 물고문 정황을 언론에 알린 것과 관련, “사건의 진실을 확실하게 밝혀서 진술 번복이나 사건은폐가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고 이유를 설명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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