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5일(미국시간) 미국의 경제 성장 둔화를 인정함과 동시에 인플레이션 압력에 적극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 바람에 불황 속에서도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시장을 엄습하면서 미 증시가 일제히 급락했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금융회의에서 “최근 들어 근원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데 공개시장위원회(FOMC) 멤버들 간에 광범위한 공감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 경제의 성장 둔화 가능성이 더 이상 전망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소비지출과 부동산 시장, 각종 경제지표 등에서 둔화조짐이 가시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버냉키의 이 같은 발언은 금리를 추가 인상할 뜻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상당수 월가 전문가들은 이달 말 열리는 FOMC에서 금리가 5.25%로 0.25%포인트 인상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버냉키가 ‘인플레를 좌시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발언의 강도를 높인 측면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물가불안 역시 일시적 현상이라며 사태추이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 지난달 10일 열린 FOMC 회의에서도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지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인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한국은행이 현재 4.0%인 콜금리 인상과 동결을 놓고 고심중이어서 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금리를 한국이 동결하고 미국은 올린다면 한ㆍ미 간의 금리 격차는 1.25%까지 벌어지게 된다.
올해 초 취임 이래 미국 경제의 성장세에 대해 줄곧 낙관적인 시각을 피력해 온 버냉키의 이날 발언 이후 뉴욕 증시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지난주 종가에 비해 1.77%, 나스닥 종합지수가 2.24% 급락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버냉키의 발언으로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다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1970년대와 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한 분석가는 “성장 둔화 시점에서 인플레를 경계하겠다는 발언은 결국 스태그플레이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공급관리협회(ISM) 서비스업(비제조업) 지수도 소비지출 약화 등의 영향으로 월가의 예상치(60.5)보다 휠씬 낮은 60.1을 기록,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 업종별로는 주택건설이 4%에 육박하는 하락률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생물공학 반도체 하드웨어 업종이 2% 이상 떨어졌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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