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몽'을 통해 본 사극의 성공법칙
‘95%의 익숙함에 5%의 낯섦’.
생소한 시대와 생소한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 외엔 어디선가 본 듯 너무도 익숙하다. 시각적 새로움이라는 포장을 한 꺼풀 벗기고 보면, 거기엔 지난 몇 년간 흥행에 성공한 기존 사극의 서사구조가 고스란히 둥지를 틀고 있다.
MBC 드라마 ‘주몽’이 방송 7회 만에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주몽’의 성공은 ‘주몽’만의 새로운 점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오히려 ‘주몽’이 기존 인기 사극의 성공 코드를 집대성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한국인이 어떤 사극을 좋아할까, ‘주몽’을 통해 본 사극의 성공법칙을 짚어본다.
1. 성공한 영웅을 그려라
1990년대까지 성공한 사극의 대부분이 여인들의 암투를 다룬 궁중사극이었다면, 2000년대 는 끊임없는 시련을 통해 성공에 이르는 영웅사극을 기본틀로 하고 있다. 빠른 전개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결구도로 시청자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고, 끝없는 상승구조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 요즘 사극의 흥행코드.
실제 실패한 영웅의 이야기를 그린 ‘장길산’과 ‘신돈’, 영웅의 성공기보다는 디테일한 스토리라인과 캐릭터의 멜로에 치중한 ‘다모’ 등은 ‘마니아 드라마’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대결을 통해 승부를 가리고 그 과정에서 점차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영웅의 이야기를 선호하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 여기에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시간을 분절해 이야기를 보여주는 연속극의 형식상, 실패한 영웅 이야기의 비장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어렵다는 점도 작용한다.
2. 숙명의 라이벌은 필수
최완규, 정형수 작가가 공동집필하는 ‘주몽’은 라이벌과의 대결구도를 중심으로 영웅의 성장과 성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 작가의 전작 ‘허준’, ‘허준’의 이병훈 PD가 선보인 ‘대장금’ ‘서동요’ 등의 서사 구조와 유사하다. ‘허준’의 유도지와 ‘대장금’의 금영, ‘서동요’의 사택기루 등 이병훈 PD의 사극에는 주인공의 라이벌이자 그를 곤경에 빠뜨리는 캐릭터가 있고, ‘주몽’도 대소왕자라는 숙명의 라이벌과의 대결을 통해 성장해간다.
물론 대립구도가 없는 드라마는 없지만, 성공한 사극들은 평생을 대립하는 숙명의 라이벌을 ‘짝패’로 갖는다는 점에서 변별된다. ‘신돈’의 경우, 특정 라이벌이 아니라 시대별로 신돈에 대립하는 정적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 갈등을 압축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채 효과를 분산시키고 말았다.
3. ‘미션 임파서블’의 연속
요즘 사극이 젊은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터넷의 롤 플레잉 게임과 같은 서사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영웅이 끊임없이 곤경에 빠지고 여기서 탈출하는 이야기 구조는 이용자가 쉴 새 없이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 같은 국내 롤 플레잉 게임과 유사하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불가능한 임무들을 ‘다물활’과 ‘철검’ 같은 ‘아이템’의 힘을 빌려 해결하며 성장해가는 주몽은 한 단계를 마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인터넷게임의 주인공과 비슷하다. ‘대장금’ 역시 ‘절대 미각’이나 각종 요리비법, 한방비법 등을 통해 매번 곤경에서 탈출하며 ‘레벨 업’ 됐다.
4. 비너스에서 아테나로
이제 “도련님, 도와주시어요” 같은 대사를 읊조리는 연약하고 아름답기만 여성은 사극의 주인공으로 각광 받지 못한다. 미모는 기본이요, 웬만한 남자 못지않은 지략과 기개, 무도를 갖춘 여주인공들이 사극을 평정하고 있다. 걸핏하면 “한심한 놈”이라고 주몽을 무시하는 소서노를 비롯, ‘서동요’의 선화공주, ‘대장금’의 장금, ‘다모’의 채옥 등이 여느 현대여성 못지않은 강하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선보이며 사극의 새 트렌드를 불러왔다.
5. 역사의 빈 곳을 공략하라
최근 사극들은 고증에 큰 신경을 쓰지 않거나 고증이 쉽지 않은 소재를 점점 편애하는 추세. 역사적 사실에 의해 상상력이 제한 받지 않아 운신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이는 ‘태조왕건’이 극적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며 ‘삼국지’ 적벽대전의 동남풍 일화를 가져와 논란을 빚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몽’은 사료의 빈곤으로 인해 이야기의 대부분을 허구로 대체한 창작물이다. 철기시대 한반도를 배경으로 할 뿐, 그 시대의 역사성을 거의 반영하지 않은 채 오락적 재미에 주력, 굳이 고구려 건국기를 배경으로, 주몽을 주인공으로 삼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비판을 들을 정도다. ‘서동요’와 ‘대장금’, ‘다모’ 역시 사료의 절대 부족으로 고증이 어려워 상상력으로 역사의 여백을 메웠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사극이 역사로부터 도망쳐 고대 영웅의 이야기를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로만 소비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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