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14> 파블로 피카소
알림

[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14> 파블로 피카소

입력
2006.06.06 14:01
0 0

20세기 최고의 화가, 조각가. 브라크와 더불어 입체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아버지 호세 루이즈 블라스코(Jose Ruiz y Blasco)와 어머니 마리아 피카소 로페즈(Maria Picasso y Lopez)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화가이자 미술학교 교사이자 지방 미술관의 큐레이터였다.

아들의 재능을 일찍부터 간파한 아버지로부터 전통 아카데미 방식의 미술 수업 기초를 교육받았지만 이름은 어머니의 것을 썼다. 그의 출세작은 입체파의 탄생을 알린 ‘아비뇽의 처녀들’(1907). 정치적 의미를 갖는 작품으로,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군의 만행을 폭로한 ‘게르니카’(1937),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1951)이 있다.

‘분석적 큐비즘’ 다음의 본격적인 입체파 단계인 ‘종합적 큐비즘’ 시기에는 종이 및 기타 다른 재료를 화면에 붙이는 혁명적 발상을 회화에 도입하기도 했다.

1943년의 아상블라쥬 작품 ‘황소머리’는 피카소가 고물상에 있던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을 떼어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방법론상으로 2차원 콜라쥬를 3차원으로 확장한 이 작품은 피카소의 유머러스한 시각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1967년에 시카고 시내 광장에는 피카소의 작품을 모델로 제작된 옥외 강철 조각(높이 50피트, 무게 162톤)이 설치되었는데 일종의 공공미술에 속하는 이 작품은 시카고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기네스북의 기록에 의하면 피카소는 평생 동안 유화 1만3,500 점, 판화 10만 점, 북 일러스트 3만4,000 점, 조각 300 점을 만들었다. 그의 연인 도라 마르를 입체파풍으로 그린 초상화 작품은 지난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9,520만 달러(약 885억원)에 익명의 소장가에게 낙찰되었다.

최고가 경매기록은 2004년 소더비에서 1억400만 달러에 팔린 피카소의 다른 작품 ‘파이프를 든 소년’이다.(물론, 오늘날 시가로 환산한 최고 기록은 반 고호의 ‘가쉐 박사의 초상’이 갖고 있는데, 1990년 당시 8,250만 달러, 오늘날 시가로는 약 1억1,170만 달러다.) 그는 1944년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50년과 1962년에 레닌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전시는 9월 3일까지 계속된다.

이재현(이하 현) 피카소 선생님, 이번 전시 제목이 ‘위대한 세기’입니다. 마치 지난 20세기 미술이 오로지 선생님의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유화 50점을 포함해서 140여 점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굉장한 전시입니다. 전 속물이라서 그런지 전시 작품가 총액만 6,000억원에 이른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피카소 야, 선생님이 뭐냐? 쪽 팔리게. 그냥 형이라고 불러.

현 (움찔) 선생님이 워낙 ‘양아치’ 아티스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머뭇)…‘?아’라고 부를게요. 저 같은 속물은 예술성보다도 돈 액수에 기가 죽는 편이라서 그런데요. 이번 전시작 중에서 ‘솔레르씨 가족’(1903)은 물경 500억 원짜리라지요, ?아?

피카소 돈으로 치자면,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내가 어떻게 당하겠냐? 그 작품들이 경매장에 나오지 않아서 그럴 뿐이지. 난 젊어서부터 뜨기 시작했으니까 내 그림 값에는 별로 놀라지 않는단다. 고흐 형님은 살아 생전 40프랑에 죽기 6개월 전 유화 한 점을 달랑 팔았던 것이 유일한 것이었다고들 하는데 난 단지 고흐 형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란다.

현 하지만 ?아는 첫 번째 부인인 올가 코클로바와 이혼해주지 않았지요? 올가가 1955년에 죽을 때까지 법적으로는 부부였다고 들었어요. 1927년에 네 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 발테르를 만났고, 1930년대 중반부터는 올가와는 별거 상태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피카소 그야 당시 프랑스 법률로는 이혼하면 재산을 반 뚝 잘라줘야 했으니까 그랬지.

현 그럼 ?아도 돈에 신경을 쓰기는 한 셈이네요.

피카소 돈 문제보다도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 어쨌든 나로서는 그 때가 아주 힘든 시기였지.

현 그렇듯이, 한국 사람들 대다수에게 ?아는 ?아의 예술 세계 자체보다도 ?아의 사생활로 더 유명해요. 만으로 92세까지 살고, 알려진 것만 해도 일곱 명의 연인과 번갈아가며 연애를 하고…, ?아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명성, 돈, 정력이지요. 제 초딩이 시절의 신문 해외토픽에 ?아의 소식이 드문드문 실리고는 했지요. 종종 사진에는 ?아가 ‘웃짱’을 깐 상태로 나오곤 해서, 역시 아티스트가 되려면 먼저 정력이 센 일류 양아치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어린 마음에 말예요.

피카소 내 맘에 드는 사진은 사진작가 로베르 두와노가 찍은 ‘라이프’지 표지 사진이야.

현 아, 예. 그거 기억나요. 스트라이프 무늬 티셔츠를 입고 두 손으로 유리창을 짚고 밖을 내다보는 거요. 나름대로 ‘뽀대 나는’ 사진이었지요.

피카소 근데 넌 말할 때면 왜 그렇게 ‘쌍티’가 팍팍 나냐?

현 선거 끝난 지 窄?안돼서 그래요. 지난 번 선거는 일종의 정치적 ‘학살’이었지요. 지금 제 내면 세계는 황폐하기 그지없답니다. 요즘 ‘폐인’으로 살고 있어요.

피카소 “정치는 짧고 교육은 길다”는 말 하나 건졌으면 되는 거야.

현 (헐) 그럼, 여기서 교육이란 영어나 수학이 아니라 ‘문화예술’ 교육이겠네요? ?아는 우리 한국 하고는 인연이 깊으신데…, 일찍이 ‘한국에서의 학살’도 그리시고요.

피카소 신문을 봤으면 알겠지만, 지난 주 보도에 의하면, 한국전쟁 때 미국 정부가 미군들로 하여금 피난민을 향해 총격하도록 허용했다는 당시 무초 주한 미국대사의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하지? 그 편지는 노근리 학살 당일 작성된 거란다. 내 그림은 바로 그 학살을 그림으로 선취(先取)한 거라고 할 수 있지(므흣).

현 그럼 ?아는 파시즘에는 결단코 반대하시는 건가요?

피카소 ‘게르니카’가 보여주는 세계도 바로 그런 거지. 난 스페인 내전 당시 반파시즘 인민전선 편이었단다. 전후에 공산당에 가입한 것도 다 그런 연장선에서였고.

현 ?아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와 헬렌 켈러 여사와 더불어 20세기의 대표적인 사회주의자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까?

피카소 그야, 그렇지. 과학 쪽과 사회활동 쪽에는 그 두 양반이고, 예술계 하면 나지.

현 위대한 예술과 혁명적 정치가 양립가능하다는 말씀이신가요?

피카소 야, 너는 정말 구제불능 ‘올드 보이’로구나. 꼭 그런 식으로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겠니? 예술은 예술이고 정치는 정치인 거지. 정치를 떠나서 내 작품들은 그때그때마다 미술사적으로 ‘혁명’적인 의의를 가졌었단다. 현대미술이 입체파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초딩이라면 다 아는 얘기 아니냐?

현 하지만 현대미술은 어려워요, 저 같은 속물에게는요. 솔직히 말씀 드려서 ?아의 작품이 왜 위대한 것인지 ‘느껴지지’ 않아요.

피카소 그건 네가 그림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의 틀이 기본적으로 사실주의적인 거라 그런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정말로 좋은 그림을 많이 보지 못해서 그런 거고. 그리고 대다수 현대미술 작품은 ‘느끼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현 그 얘기는 현대미술사에 얽힌 ‘담론’, 그러니까 ‘구라’를 많이 알아야 한다는 거잖아요? 보통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얘기네요.

피카소 그럼 이렇게 설명하면 어떻겠니…. 으음, 너 내 초기 그림 봤지?

현 예. 그것들은 한눈에 봐도 잘 그린 작품들이라고 느껴져요.

피카소 그럼, 입체파나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내 작품은 일부러 못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하면 되겠니?

현 일부러 못 그린 그림요? 하지만, 그걸 위대하다고들 하는 거잖아요?

피카소 그러니까, 얘기가 되는 거지. 일부러 못 그린 그림 혹은 다르게 그린 못 그린 그림이야. ‘그린’이란 말의 뜻이 앞뒤에서 서로 다르게 쓰인 거란다. 차원이 달라지는 거지. 또, 그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내가 한 거구 말이야.

현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다음 주 화요일 월드컵 토고전 열리기 전까지 버틸 수 있게 폐인들에게 덕담이나 한 마디 해주세요, 공산당원을 대표해서요.

피카소 뭘?

현 ?아, 국민 ‘차며’정부가 개혁적 진보세력의 이미지와 에너지를 다 갉아먹은 이 마당에, 예컨대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요, 앞으로요?

피카소 난 그런 거 모르겠고, 아무튼 노회찬 더러 내 전시나 보러 오라고 일러라. 정치인은 매스컴을 타야 하는 거니까.

문화비평가 이재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