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양독 정상회담으로 냉전 장벽을 뛰어넘은 브란트 서독총리는 측근의 스파이 사건으로 전격 퇴진한 뒤 정치는 물론이고 양독 관계에 일절 나서지 않았다. 같은 사민당의 후임 총리 슈미트가 브란트의 급진적 동방정책 추진으로 경색됐던 대미 관계를 회복하고 동구권과의 교류 속도를 조절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브란트는 분단의 중심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역사의 거인으로 우뚝 섰다. 독일인들은 브란트의 위업을 되새기며 그를 ‘통일의 아버지’로 추앙했다.
● DJ 열차방북 집착은 어색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갈 즈음, DJ가 뭘 타고 갈 것인지를 화제로 삼듯이 브란트의 첫 동독방문 때도 논란이 있었다는 얘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 동독은 브란트가 항공편으로 곧장 동베를린으로 올 것을 요구했다. 반면 브란트는 열차로 서베를린을 거쳐 가겠다고 했다. 동독 속에 고립된 서베를린의 상징성을 부각시키려는 뜻이었다, 그러나 동독이 끝내 거부, 결국 서독 접경 에어푸르트 시로 회담장소가 바뀌었다.
브란트는 그래도 열차 편을 고집,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철도 연변에 몰려나온 동독 주민이 경찰 제지를 무릅쓰고 환호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한민족이고 화해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확인, 몸이 떨리는 감동과 책임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대통령도 옛 경평(京平)가도를 달리며 민족화해 의지를 북녘에 널리 알리고 싶었겠지만, 북쪽의 사정과 생각이 다른 터에 집착할 일은 애초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때 누구도 고집하지 않은 열차방문이 DJ의 두 번째 평양 행을 앞두고 논란의 초점이 된 것은 기이하다.
물론 DJ가 반세기 만에 이은 경의선 새 철로를 달린다면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남북교류 진전을 안팎에 알리는 데도 도움될 만 하다. 노령에 건강도 좋지 않아 열차방북은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DJ 주변뿐 아니라 정부가 경의선 연결구간 12km의 시험운행을 이끌어내는데 유난히 매달리는 모습은 편견 없이 보아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보수언론이 개탄하듯이 제 돈 들이고 사정하는 게 못마땅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DJ 방북이 6년 전과 달리 상징적이든 실질적이든 이렇다 할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핵 문제 등 남북이 얽힌 어떤 현안에서도 북한이 이제 DJ를 상대로 듣기 좋은 말을 넘어 실질적 양보나 제안을 할 리 없다.
따라서 ‘추억여행’에 그치기 십상인 DJ의 열차방북과 시험운행에 정부가 집착한 것도 DJ를 태운 경의선 열차의 상징성만을 노린 것으로 비쳤다.
그 것만도 나쁠 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시험운행 성사를 장담한 정부의 신뢰가 손상된 것을 모두 북한의 변덕, 특히 군부의 완고한 태도 탓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이런 인식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정부의 변명은 애초 위선적이거나 안이한 판단을 숨기는 것이고, 언론과 전문가가 덩달아 북한 군부를 손가락질 하는 것은 늘 그렇듯이 만만한 상대를 욕하는 것으로 본질을 흐리는 것에 불과하다.
● 북한여행의 의미 자문해야
이번 사태의 본질은 미국이 금융봉쇄에 이어 개성공단 사업까지 시비하는 상황에서 남북이 어떤 선택으로 교류확대를 꾀할 것인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경의선 개통으로 남북의 독자적 모색 의지를 과시하려는 생각인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그야말로 자주적 대응은 하지 못하면서, 남북교류 실적만 자랑하려는 것에 동조할 뜻이 없음을 새삼 확인시킨 것으로 볼만 하다. 그런 북한을 괘씸하게 여길게 아니라,
정부 스스로 진정성이 부족하거나 전략적 대처능력이 모자라는 것을 자책할 일이라고 본다. 그게 외부의 객관적 평가다.
이렇게 볼 때, DJ와 정부는 물론이고 개성과 금강산 등 북한 땅을 찾는 이들은 이제 내가 왜 북한에 가는가를 진지하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또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은 브란트의 민족적 애정과 책임감, 그리고 겸허함을 참고하는 게 좋겠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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