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르던 고양이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세상 끝난 것 같은 얼굴로 돌아다니던 친구가 있다. 그 일을 계기로 길고양이들의 생태와 처지에 관심을 갖게 돼 유기동물 관리단체에서 자원봉사도 했다고 한다. 우리 둘이 고양이 얘기만 줄곧 하는 것에 염증을 느꼈는지 다른 친구가 시비를 걸었다.
고양이에게 쏟는 사랑과 돈을 굶주리는 사람에게 돌릴 생각이 없냐는 것이다. 고양이나 개에 집착하는 사람은 사람과 나누어야 할 사랑을 동물에게 쏟는 이기적이고 변태적인 족속이라고까지 말했다. 고양이 애호가 친구는 앞 말에 변명하다가 뒷말에 발끈했다. 앞 말에는 나도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우리 노동자들도 힘든데 외국인 노동자 보호에 왜 신경을 쓰느냐,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딴 나라에 구호물자를 보내느냐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리를 매도하던 친구가 또 다른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내 고양이 애호 친구는 휴대폰을 열어 내게 자기 고양이 사진을 보여줬다. 고혹적인 자태의 페르시안 종 고양이였다. 잃어버린 고양이의 형제란다. 그에게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고양이였다면 누군가 잘 돌보고 있을 것 같았다. 야생 잡종 길고양이들과 달리.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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