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이 먼저 할 일은 지도체제를 정비하고 선거에서 확인된 민의를 뒤늦게라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와 그 기본 장치인 선거의 본질적 요구다. 여당 내부에서 일고 있는 정책 재검토 움직임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동안 현실 적합성보다는 야당과의 대결이나 청와대의 의사를 축으로 정책 결정을 해 온 데 대한 반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권은 지금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청와대의 태도를 보면 여당의 달라진 움직임조차 결국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우울한 짐작을 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주변의 태도에서는 선거결과가 웅변한 기본적 요구에 답하려는 반성과 자각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주말 정책홍보 토론회에서 “선거 참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기존 정책의 변함없는 추진을 다짐했다. 자신의 대선 승리 경험을 들어 “역풍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답답하다 못해 이제는 측은한 생각까지 들 정도다. 언제까지 국민과 싸우면서 승패를 따지고 있을 요량인가.
한동안 노 대통령을 보좌했던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이 “정부ㆍ여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탄핵”으로 읽었듯,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정부ㆍ여당에 대한 사망 진단이다. 문 의원의 정세 인식은 국민과 함께 가지 못한 개혁의 실패를 자인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라면 당을 없애라는 명령이라도 따라야 한다고 지적한 데서도 돋보인다. 청와대의 인식이 그 절반에만 이르렀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국민 대다수가 이제 더 이상 여당의 지도체제나 당ㆍ청 갈등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정치기구인 만큼 개개인의 삶의 안정을 방해하지나 말라는 소극적 요구가 남아 있을 뿐이다. 국민과의 싸움을 중단하고, 문제가 드러난 정책을 손질하는 것이야말로 사망진단을 받은 정부ㆍ여당에게 남겨진 책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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