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후 14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베이징(北京)의 한국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는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나서 자랐다. 주재원으로 나와 주저앉거나 개인사업을 하는 이들의 부모들은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다.
50만의 한국인이 사는 중국에는 이런 장기체류자나 영주자들이 적지 않다. 중국 내 한인동포가 지난 2년간 29만 명이나 증가했다는 정부 발표도 이런 영주자들의 급증을 반영한다.
● 50만 교민중에 장기체류 많아져
수교 후 밀물처럼 중국에 온 이들은 중국 이민 3세대라 할 수 있다. 18세기 중엽 기근과 20세기 초 일제의 침략을 피해 간도와 만주로 건너온 조선족 선조들의 뒤를 잇는 제3의 물결이기 때문이다. 이번 러시는 중국의 고도성장이 지속될 금세기 중반까지 지속될 것이다.
중국 러시가 기존 중국 국적 재중동포인 조선족의 지형을 뒤엎어놓은 점은 괄목할만하다. 수교 전 옌볜(延邊)자치주와 동북3성에 거주하던 200만 조선족의 절반은 한국인들이 밀려온 베이징(17만), 산둥(山東ㆍ20만), 상하이(上海)를 포함한 화동지방(8만5,000) 등으로 내려왔다. 중국의 도시화 물결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기업과 한국인이 없었다면 이런 극적인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물결의 영향이 이 만큼 깊다는 것이고, 따라서 책임감도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인 장기체류자들은 이민자가 아니다. 중국의 경우 영주권제도가 없고, 미국과 같은 시민권 취득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장기 체류자들은 매년 거류기간을 연장하면서 단기 체류자들과 같은 법적인 지위를 지닌다.
이 때문인지 장기체류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재외동포로 여기지 않는다. 사업하고 살기 편한 중국에서 머물다 가는 나그네 정도로 생각한다. 또 같은 재외동포인 조선족과의 공통분모를 찾기 보다는 차별성만을 강조한다.
5만의 한인들이 사는 베이징 왕징(望京)에는 한국인 상대 음식점과 술집에서 일하는 10만의 조선족들이 있다. 하지만 조선족과 한인간 소통은 원활하지 못하다.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이 돈만 바란다고 여기고, 조선족들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업신여긴다고 반목하는 분위기가 짙다. 왕징의 한 조선족 인사는 “수교 초기 조선족과 한국인들은 어떻게 소통할지 몰랐다”며 “이제 조선족들은 한국의 선진문화와 세계화 의식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 기존 조선족과의 소통 고민해야
또 한인들이 중국에서 만드는 문화는 지극히 소비적이다. 왕징, 선양(瀋陽), 칭다오(靑島) 등 새 한인 밀집지역에는 변변한 문화시설 하나 없고 술집과 유흥업소만이 무성하다. 이 속에서 한인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중국 사회에 대한 기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664만 재외동포 중 244만을 차지하는 재중동포 사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 내 조선족 문제와 엇비슷한 비중으로 재중 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다루는 지혜가 발휘돼야 한다. 현재진행형인 이 사안은 우리 자신의 고질을 고치는 것이기에 고구려사 왜곡을 낳은 중국의 동북공정, 중국 내 한류 만큼이나 중요하다.
이영섭 베이징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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