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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강석우의 피카소展 관람기/ 아이의 문을 가진 大家… 볼수록 고민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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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강석우의 피카소展 관람기/ 아이의 문을 가진 大家… 볼수록 고민스러운

입력
2006.06.06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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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가끔 고교 시절 미술 선생님이 생각난다. 어느 미술시간, 수업종이 울리자 얼른 뒷자리 친구 스케치북에서 찢어낸 도화지와 빌린 붓 하나를 책상에 올려놓고 뻔뻔하게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게 “이번 학년 마칠 때까지 준비 제대로 해오는가 보자”고 하셨다. 짧은 순간이지만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뭘 그려야 할지 막막하던 나는 뒷자리에 앉은 미술반 친구에게 조금만 그려달라고 애원을 해서 대충 도화지의 빈 곳을 채웠다. 미술 선생님은 내 그림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호순이가 그려줬구나” 하셨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지?”

그게 학창시절 미술에 관한 내 기억의 전부다. 나는 한마디로 미술에는 젬병이었다.

1978년 배우가 되면서 한 문화부 기자를 알게 됐는데, 미술도 담당하던 그분 덕분에 화랑이라는 데를 처음 가봤다. 그때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짬만 나면 화랑을 찾는다.

나는 화랑에 갈 때마다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한 작가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그림을 너무 빠르게 성의 없이 보고 나온 건 아닐까 해서다. 지난달 아내와 ‘2인전’을 할 때 무슨 재미없는 영화 포스터 보듯 후딱 보고 나가는 관람객은 솔직히 야속했다. 반대로 내 그림 앞에서 구석구석 관심 있게 살펴보며 감상하는 분은 너무 고마웠다.

그림을 그린 지 2년밖에 안된 내게 많은 분들이 미술 공부를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을 때마다 난 이럽게 대답하곤 한다. “그리는 것도 공부지만 보는 것도 공부예요. 저는 한 30년 봤지요.” 그렇다. 내 그림의 8할은 오랫동안 눈으로 익힌 명작들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 작품이 대단하다는 것은 아니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세계적인 대가들의 그림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이 생긴 것이다.

고갱, 고흐, 마티스, 렘브란트, 샤갈 등 대가들의 그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다. 그래서 대가의 작품전이 열릴 때마다 가족과 함께 달려간다.

최근 ‘위대한 세기: 피카소’ 전을 보았다. 솔직히 피카소의 그림을 한 번 보고 이해하기란 어렵다. 내가 만약 저렇게 얼굴과 뒤통수 그리고 엉덩이를 한 평면에 동시에 표현했다면 사람들은 “이게 그림이냐, 뭐냐”며 엄청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피카소의 그림은 어찌 보면 장난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피카소의 그림을 걸작이라고 칭송하는 건 왜일까. 그 답을 찾지 못해 머리 속이 약간 어지러웠다. 알 듯 모를 듯. 내 눈에 그의 그림은 그랬다. 해답은 피카소의 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고 최선을 다한다.”

전시회에 가보면 어린 관람객들은 그림 감상에 방해를 줄 만큼 시끄럽고 번잡스러운데 이번 피카소전에서는 달랐다. 스스로 즐거워했고, 설명을 듣는 그들의 눈빛은 빛났다. 내가 어린아이의 눈을 갖지 못한다면 영원히 피카소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다.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피카소전을 보고 나서 내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그럼 ‘어린아이처럼’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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