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열리기 전 한 TV채널에서 방영한 쇼 프로그램 무대에 오른 여가수는 이렇게 노래했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가고만 있어” TV와 신문은 온통 ‘월드컵’이라는 세 글자로 뒤덮였고, 시청 앞에는 나란히 붉은 색 옷을 맞춰 입은 수천명의 인파가 모여들었다. 월드컵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6월 첫번째 일요일 밤의 장면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세계 29위’ 대한민국이 16강은 물론이고 8강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해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단 1승도 거둔 일 없는 한국의 성과를 감안하면 ‘모두 미쳐가고만’ 있다는 여가수의 외침이 단순한 노래말로만 들리진 않는다.
전 국민의 기대 속에 진행된 대한민국과 가나의 평가전에서 한국은 시종일관 열세에 몰린 끝에 1-3으로 졌다. 경기 내용과 결과 면에서 모두 밀린 명백한 완패였다.
양팀 모두 최정예 멤버가 총출동해 맞붙었지만 선수 개개인의 기량 차가 워낙 컸고, 다소 무리한 원정 경기 일정을 마친 한국 선수들은 체력 저하까지 겹쳐 저조한 성과를 거두고 말았다.
월드컵 전에 열린 마지막 경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한국과 가나의 경기력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
조직 축구를 통해 미드필드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고 빠른 역습으로 결정지어야 할 한국은 가나에게 미드필드를 완전히 내준 채 전반 중반부터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에시엔과 문타리 등을 배치한 가나의 허리가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의식한 아드보카트 감독은 안정환을 원톱에 내세운 뒤 박지성을 그 아래에 배치하고 양쪽 윙포워드로 출전한 이천수와 박주영을 미드필드쪽에 밀착시켰다. 박지성의 공격력을 살리고 미드필드의 숫자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모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드필드 쪽으로 근접한 이천수와 박주영의 공격 가담은 느슨했고 최전방에 남겨진 안정환은 완전히 고립된 채 비틀거렸다. 다른 때보다 전진 배치된 박지성도 평소의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종종 작은 실수를 연발했다.
문제의 시작은 상대 미드필드의 강한 압박이었다. 그 중에서도 에시엔의 위력은 대단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에서는 11명 중의 하나였을 뿐이지만 이날 경기 출전 선수들 중에서 그는 오직 단 하나의 반짝이는 별이었다.
중원을 헤집으며 한국의 공격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가나의 역습 시에는 빠른 움직임과 적절한 패스로 한국 수비진을 농락했다. 두번째 골을 엮어냈듯 프리킥도 정교하며 세번째 골 장면에서 보듯 볼에 대한 집착력이나 기동력도 대단히 좋다.
이처럼 상대에 밀린 한국의 미드필더들은 수비수들과의 간격을 좁히며 버텼지만 그나마 2선에서 깊숙하게 찔러 들어가는 가나 미드필더들의 정확한 중거리 패스가 두려워 앞쪽으로 나서지 못했다.
더욱이 한국은 역습 상황에서도 빠른 공세를 펼치지 못했고 한국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면 어느새 달라붙은 가나 미드필더들의 압박으로 인해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에시엔이 토고가 아니라 가나 국적이라는 것이다.
MBC 축구해설위원, 엠파스 토털사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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