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일 정책홍보토론회에서 “선거 패배가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소회를 밝힌 사실이 전해지자 열린우리당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중진, 소장파를 막론하고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고도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이냐”는 반박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당장 지도체제 정비 문제로 경황이 없어 노골적인 마찰을 피하는 분위기지만, 당내에 내연하는 불신과 불만은 머지않아 당청 갈등과 균열이 심각하게 폭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 참패에서 교훈을 얻으려 하지않고 민심이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노 대통령의 인식에 경악하고 있다. 특히 민심이반을 일종의 ‘역풍’으로 치부하며 “역풍을 맞았지만 대통령이 됐다”는 언급을 한데 대해선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 한 중진 의원은 4일 “자신만 옳고 표를 주지 않은 국민은 역풍이라는 인식은 너무 독선적이든지, 안이하든지 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이 1993년 캐나다 보수당이 소비세 인상으로 총선에서 2석만 얻은 사례를 인용하며 “소비세 인상이 캐나다 경제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대목도 도마에 올랐다. 김형주 의원은 “당은 망해도 된다는 의미인지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특히 어떤 정책이 캐나다 보수당의 소비세에 해당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정부정책은 모두 옳고 국민은 틀렸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정책만해도 강남권의 잘사는 사람들이 아닌 강북이나 지방의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 수정, 보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의 보완은 그 자체로 개혁의 후퇴이고 잘못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독선의 또 다른 표현이자 무능의 자기 시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상호 대변인이 공식브리핑에서 “노 대통령의 언급은 공무원들에게 동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민심을 거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는 등 분란을 진정시키기 위한 언급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발언들은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한 채 흘러가는 분위기다.
대다수 의원들은 노 대통령의 언급에서 결별의 불길한 사인을 보고 있는 듯 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대통령이 철학과 역사와 대화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정치는 현실성을 잃게 된다. 당은 현실 위에 서야 하기 때문에 그런 대통령과 함께 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당 밖에서도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치전문가인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민심을 수용하는 것이 선정(善政)의 기본이고 민심은 선거를 통해 읽는 것인데 민심과 상관없이 갈 바에야 선거를 하고 민주주의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스타일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고려대 임혁백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정책기조에 대한 신념이 뚜렷하다 해도 민심이 틀렸다고 할 게 아니라 지금의 정책을 계속 추진할 수 밖에 없는 충정을 밝히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게 순서”라고 비판했다.
박성민 대표는 “아무리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언급이었다 해도 대통령의 한마디는 최종적인 메시지인 만큼 좀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좀더 표현을 가려서 했어야 하는데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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