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은 해방감, 상암은 일체감!”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축구대표팀이 가나를 상대로 마지막 평가전을 치른 4일 밤. 승리를 염원하는 마음은 하나였지만 서울에는 두개의 붉은 탑이 섰다.
바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상암 서울월드컵경기장(상암구장). 빨간 티셔츠와 진홍 스카프로 무장한 붉은 악마들은 각자 취향에 따라 응원장을 택했다. 넘실대는 붉은 물결은 같은 색이지만 시청과 상암의 이미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날 2만여명이 운집한 서울광장은 역동적인 거리응원의 메카다. “대~한민국”으로 하나가 됐던 2002월드컵의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인파가 아무리 몰려도 서울광장을 고집한다.
회사원 김모(29)씨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커다란 붉은 원을 만드는 광경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대학생 이재민(26)씨는 “뻥 뚫린 거리에서 목청껏 응원구호를 터뜨리며 누리는 해방감은 경기장에선 경험할 수 없다”고 자신했다.
거리응원의 중심인 만큼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린다는 것도 서울광장의 매력이다. 이날 밤에도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SKT와 방송사가 꾸미는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가 열려 흥을 돋웠고, 줄넘기 시범단, 병아리 응원단 등 볼거리도 많았다.
대학생 김소은(23ㆍ여)씨는 “연예인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응원하기도 편해 기쁨이 두 배”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서울광장은 연인 혹은 동무끼리 찾아온 10대와 20대가 많다.
또 오랜 기다림 끝에 입장권을 받아야 입장이 가능한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비해 서울광장은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개방돼 있다는 대중성이 장점으로 꼽힌다.
1만여명의 응원행렬이 이어진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30~50대가 주축인 가족 단위의 붉은 악마가 많았다. 입장권을 받기 위해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줄을 선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하는 데다 무엇보다 안전하고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상암파’들의 설명이다.
세 딸과 경기장을 찾은 주부 이현자(45)씨는 “아이들을 데려왔는데 길거리보다는 덜 복잡해 안전 면에서 좋다”며 “힘들면 의자에 앉아 쉴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고 설명했다. 김용훈(29)씨는 “시청광장은 화장실도 찾기 힘들고 막상 다녀오면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는데 상암은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편하다”고 했다.
실제 경기장에서 펼치는 응원이라 감동이 진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성호(34)씨는 “시청광장보단 경기장 안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보는 게 마치 진짜 경기를 보듯 생동감 있고 짜릿해 일체감도 그만큼 크다”고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서울광장과 서울월드컵경기장 모두 4년 전의 순수하고 자발적인 붉은 물결은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과 방송의 상업주의에 물들어 ‘응원’이 아닌 ‘관전’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서울광장에서 만난 회사원 김모(43)씨는 “과도한 통제도 문제지만 마치 방송사의 쇼 프로그램을 구경하는 방청객으로 전락한 느낌”이라고 불평했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한 대학생 역시 “응원 분위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는 왜 여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