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중년치매’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과 가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파괴적 질병인 중년치매의 실상이 방송 등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년치매에 대한 관심은 지난달 영화 ‘내일의 기억’이 개봉되면서부터 급격히 고조됐다. ‘라스트 사무라이’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배우 와타나베 겐(渡邊謙)이 주연과 감독을 맡은 영화는 어느날 치매 선고를 받은 49세 회사원의 이야기를 담아 공감을 불렀다. 영화 개봉을 전후해 언론들이 중년치매를 앞 다투어 보도했고, 환자와 가족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활발해 졌다. 후생노동성이 새롭게 중년치매의 실태파악에 나서기로 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노인치매와 구별되는 중년치매는 인생의 절정인 청장년 시기에 찾아오는 불행이라는 점에서 한층 심각하다. 처음에는 가벼운 건망증에서부터 시작해 언어장해와 이상행동으로 발전한다. 노인치매 증상인 알트하이머병과 뇌혈관장애증 이외에도 진행성대뇌변성질환(Pick's disease)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온화했던 사람이 화를 내거나 상대를 무시하는 등 이상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치매 남편(51)을 보살피고 있는 A씨는 신문 인터뷰에서 “가정의 인생 설계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울먹였다. 그는 집에서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일을 그만 두었고, 딸도 악화된 경제사정으로 진학을 포기했다. 많은 환자들은 전문 치료 시설로 보내지지만 폭력성 등으로 대부분 적응하지 못해 결국은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년치매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대책, 가족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환자와 가족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현재 일본의 중년치매 환자는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가족이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증에 빠지는 등 고통이 가족 내에서 확대된다.
이 때문에 환자와 가족들의 자구 움직임은 필사적이다. 가족모임을 결성해 정보를 교환하고, 환자의 증상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치료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경증 중년치매 환자인 오타 마사히로(太田正博ㆍ56)씨처럼 실명으로 자신의 질병을 밝히고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복지시설에서 상담자로 일해 온 그는 현재 일본어의 핵심인 한자를 읽거나 쓰지 못하는 상태로 “이 병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병에 걸렸더라도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 강연을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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