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보다 못한 인간.” 그 X는 개나 돼지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게 하는 인면수심의 인간들 때문에 저 관용 어구도 바뀌어야 할 판국. 사람이 동물들한테 배워야 한다 해도 좋을 지경이다.
이 책은 동물들이 사랑도 하고 유희도 할 줄 아는, 어느 면에서는 인간 보다 더 인간적인 유기체라는 사실을 저자의 연구와 경험을 근거로 들려 준다. 책은 자연과학도의 실증주의와 객관성으로 가득하다. 40여년 동안의 연구 덕에 신경학, 동물학, 행동학, 발생학 등 9개 학문을 통달한 두 학자가 펼쳐 보이는 연구의 풍경은 동물과 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
책은 동물들의 지각ㆍ인지 능력으로 시작, 동물들의 감정, 공격성, 고통ㆍ통증ㆍ공포ㆍ호기심 등에 이어 동물들의 천재성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동물의 비상한 지각 능력과 기억력을 자폐증 환자들의 천재성과 비교한다.
그러나 그 객관성을 한 겹 벗기면 두 저자가 공유하고 있는 아픔이 드러난다. 자폐증. 그랜딘(사진)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동물학자다. 그녀가 남달리 동물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지은이 캐서린 존슨은 두 아이가 자폐아다.
이 책은 그들이 자식을 보듬듯 개나 말 혹은 소나 앵무새한테 접근하고 소통한 결과다. 닫힌 마음의 아이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들과 훌륭히 소통하게 된 그녀의 따스한 영혼이 곳곳에 숨어 있다. 자폐 영재처럼, 동물들도 특별한 재주를 가진 천재라는 관점이 책 전체를 관류한다. 현직 의사인 권도승 씨의 번역은 자칫 전문용어에 함몰될 뻔한 책을 맛나게 되살렸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