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엔 대부분의 극장들이 문을 닫는다. 일상적 삶에 딴지를 걸며 축제의 시간을 살던 디오니소스의 후예들은 숨을 고르고, 조용한 휴식에 접어든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월요일 텅 빈 극장을 이용해 기성 연극을 대체할 다른 꿈을 꾼다.
지난 월요일 대학로 우리 극장에서 작은 제의(祭儀)가 있었다. 날로 소란스러워지는 것도 모자라, 욕설과 직설의 배설 마당으로 추락하고 있는 오늘날의 극장을 정화하려는 노력이다. 두꺼운 대본을 촛불 삼고, 무보수로 참여한 배우들의 땀방울을 정안수 삼아, 제의는 시작된다. 외국어 전공 학자와 연출가들을 주축으로 한 ‘희곡 낭독 공연’.
1988년 저작권법 발효 이래 해외 희곡의 신작 소개가 현저히 줄었고, 특히 IMF 이후엔 번역극 공연이 급격히 위축됐다. 이후 고전 희곡의 각색과 해체 등으로 번역극 전체 공연건수는 많이 회복됐지만 동시대 외국 희곡 소개는 여전히 드물었다. 기획사 중심의 제작 경향 아래, 흥행성을 담보한 희곡만이 재공연 되다시피 하는 최근의 경향은 비슷한 맥락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타개하고, 영미 문화권 중심의 편중된 공연 경향을 보완하고자 시도된 ‘희곡 낭독 공연’이 2002년 낯을 튼 이래 벌써 7회째를 맞이했다. 독일의 현대 극작가 하이너 뮐러의 미번역 작품 소개에서 출발, 일본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폴란드에 이어 지금은 캐나다의 현대 희곡 4편을 번갈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섹스 중독증 엄마에 욕쟁이 딸, 덜떨어진 사위로 이뤄진 기이한 가족들의 하루를 그린 코미디 ‘변두리 모텔, 전부를 걸다’와, 살해 당한 아이의 유령이 귀가하는 사람들을 따라가며 벌어지는 비극 ‘길거리의 사자’(사진) 등 두 편이 펼쳐졌다. 물론 관객 아닌 청중 앞에서.
배우들은 언어에 고도로 집중하고, 관객은 스펙터클을 갈망하는 시각을 잠시 잠재운 채 귀를 열어 몸을 기울인다. 극장은 페로몬을 교환하는 개미들처럼 진지하게, 동시대의 삶과 문제적 상황을 교환하는 중이다. 귀 기울이다 보면 이 시대 지구의 맞은 편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무엇에 아파하며 살고 있는지,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지배 아래 맞닥뜨린 삶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과 차이에 대한 여러 생각이 오고 간다.
상업성의 성근 그물 아래 빠져 나간 비유와 상징의 언어들이 황금빛 물고기처럼 객석으로 밀려와 귓가를 간질이기도 한다. 그것은 현대연극이 잊고 있는 ‘존재의 집’, 즉 언어와 삶에 관한 사색과 통찰의 기회다. 돌아오는 월요일(6월5일)에는 대학로 우리극장(4시), 스타시티아트홀(7시)에서 불어권 캐나다의 희곡을 배우들의 정성스러운 낭독으로 만날 수 있다. 타문화권의 현대연극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반가운 기회다.
극작ㆍ연극 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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