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월드컵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2002년과는 사뭇 다르다. 2002년에는 제발 1승이라도 거두기를, 더 나아가 제발 16강까지는 진출해 달라는 염원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난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한 덕분에 올해는 우리 국민들의 염원에 ‘제발’이라는 수식어가 빠진 것 같다.
● 한국팀은 물론 축구 자체가 좋아
이는 더 좋은 징후다. 축구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축구를 축구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기업들이 오히려 ‘제발’이라는 염원을 너무도 강하게 지닌 듯하다. 월드컵 마케팅에 올인한 기업들은 한국의 성적에 마케팅의 성패가 달려있는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응원엔 2002년 월드컵에서 보였던 순수함이 사라졌다. 한 연예인이 처음 시작한 응원 댄스도 무언가 억지스럽고 어색해 보이고, 우리를 하나로 모아주었던 ‘오, 필승 코리아’라는 노래는 저작권 문제로 경기장에서 부를 수 없게 됐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강제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여전히 순수하게 남아있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첫번째는 한국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성원이다. 아무리 세상이 상업화되고 험해져도 우리 국민들의 조국을 향한 애국심만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바로 축구 마니아들의 열광이다. 한국의 축구 마니아들은 한국팀을 응원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각자 자신의 조국의 명예를 걸고 경합을 벌이는 월드컵이라는 무대 자체를 사랑하고 이에 열광한다. 필자도 그런 마니아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유럽 유학시절 현지에서 접한 차원높은 축구에 매료됐다. 주위 사람들은 너무나 열광하는 나를 보면서, 공부보다는 축구해설자가 더 어울릴 것 같다고까지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까닭에 나에겐 이번 월드컵은 한국팀의 월드컵이기도 하지만 세계 최고 팀들의 월드컵이기도 하다. 어떤 이에게는 한국의 탈락으로 월드컵이 끝나겠지만, 나에겐 결승전이 열리는 7월 10일까지 월드컵은 계속된다.
● 4년만의 축제 푹 빠져 볼 생각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것도 재미난 일이다. 내 직관으로는 프랑스가 지난 대회의 오욕을 씻고, 무서운 신예들의 돌풍과 함께 1998년의 영광을 재현할 것 같다. 루니가 빠졌지만 세계 최강 클럽인 첼시와 리버풀 선수들이 주축이 된 잉글랜드도 4강에 오를 것 같다. 한국은 프랑스에게는 패해도 토고와 스위스를 꺾고, 16강에서도 스페인을 이기고 8강까지 갈 것 같다.
물론 근거는 없다. 예감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하는 일 자체가 즐거움이고 일상의 활력이 된다. 새벽에 벌어지는 경기를 시청한 대가로 쏟아질 잠은 지하철 통근시간의 토막잠과 커피로 이겨낼 생각이다. 누군가는 나 같은 이들을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피로에 지친 일상에 월드컵은 분명히 활력소다. 한 달 간의 중독, 4년에 한번쯤은 괜찮지 않은가.
최항섭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미래연구실 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