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지만 어쩌겠어요. 흥겨운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고…”
모두가 열광하는 월드컵 야외응원전 때문에 남몰래 울상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응원의 메카’ 서울시청 앞 광장 주변에 있는 호텔 관계자들이다.
1일 오후10시. 2일 새벽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밤샘응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야외무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강렬한 전자음악이 흘러나왔다. 20여분 후 A호텔 프런트에는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너무 시끄러워 견딜 수 없으니 방을 바꿔달라”는 외국인 투숙객들의 요구였다. 한 미국인은 직접 프런트로 내려와 “내일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오늘 밤에 잠 설치면 책임질거냐”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인근 B호텔도 마찬가지였다. 1일 밤 갑작스런 소음 때문에 투숙을 취소하는 손님이 10여명에 달했다. 더구나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이 화장실을 찾아 호텔을 들락거리면서 로비 바닥은 금세 더럽혀졌다. 호텔 앞 화단은 인파에 짓밟혀 모두 망가졌고 일부 취객들은 호텔 입구에 주저 앉아 한동안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주정을 부리기도 했다.
호텔측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지만 “어서 빨리 소나기가 지나기 만을 바랄 뿐”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A호텔 관계자는 “손님들이 왜 비싼 돈 내고 호텔을 찾았겠느냐”며 “2002년에는 경기가 낮이나 저녁에 열렸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할 수 있었지만 오늘같이 밤샘응원을 하는 날엔 그저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님이 아닌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것도 곤란하다. A호텔의 경우 2002년 당시 더위를 피해 로비에서 쉬고 있던 응원단에게 “여기 계시면 곤란하다”고 말했다가 인터넷에 항의하는 글이 무더기로 올라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사전 통보 없이 행사를 강행한 주최측에 대해서도 서운함이 많다. B호텔 관계자는 “정식 경기도 아니고 새벽에 열리는 평가전이라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데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며 “주최측에 스피커 소리를 조금 낮춰달라고 연락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02년에는 그래도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소리가 많이 들렸지만 올해는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귀를 자극하는 음악소리만 요란하다”며 “거리응원이 있는 날엔 전직원이 2교대로 12시간씩 근무하느라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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