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구구절절 친절한 심리 묘사보다 더 사람 속을 웅변할 때가 있다. 송은일(42)의 첫 소설집 ‘딸꾹질’(문이당, 9,500원)은 이처럼 담백한 ‘스토리 텔링’의 위력을 새삼 실감케 하는 책이다.
책에 수록된 10편의 단편에서, 작가는 특출한 기교로 독자의 이목을 끌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교한 어휘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 그리고 정밀한 묘사가 빚어내는 ‘이야기의 힘’을 무기로 한 정공법을 구사한다. 간암으로 죽어가는 40대 농촌 총각의 최후를 나직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그려낸 ‘꿈꾸는 실락원’은 한편의 잘 다듬어진 병상 기록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들뜨지 않아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작가의 시점은 작중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내재된 ‘틈’에 주목한다. 이혼, 사별, 유산, 시한부 삶, 강간의 기억 등 ‘자신만의 지옥’으로 통하는 이 틈 사이로, ‘내 안에 들어있는 지도 몰랐던 시한 폭탄’(237쪽‘아내의 진홍빛 슬리퍼’)의 파편이 침투한다. 갑자기 찾아와 신경을 거스르다 자기도 모르게 사라지는 ‘딸꾹질’처럼, 저마다의 상처가 각인된 기억은 심리의 그늘진 구석을 맴돌다 틈틈이 일상을 침범해 평온하던 내면에 느닷없는 동통(疼痛)을 남기기도 한다.
각각의 작품에서 작가는 내상(內傷)을 간직한 인물들을 담담히 묘사하면서도, 이‘상처입은 영혼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비록 긴 여운을 남기듯 한 박자 빠르게 결말을 추스르지만 갈등의 해결, 상처의 치유를 미루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남긴다.
평범한 소재를 비범한 이야기로 다듬어 내는 평범치 않은 솜씨. 그래서 이 책은 한 곡도 흘려버릴 게 없는 가창력 좋은 가수의 앨범 같다. 끝날 때까지 ‘건너 뛰기’ 버튼 한번 누를 필요 없는 CD 한 장을 감상한 것과 같이 밀도 있는 독후감을 선사한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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