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낙타가 서 있다. 등에 짚이 실린다. 짚단도 올려지고 짚가리도 쌓인다. 지푸라기도 있다. 웬만한 낙타라면 180㎏ 정도는 거뜬하다. 물도 여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데 잘도 버틴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가닥 지푸라기가 얹히자 한 마리가 등이 꺾이며 고꾸라졌다.
다른 한 마리는 그대로 서서 쓰러진 종족을 내려다 본다. ‘사막의 일꾼’ 낙타는 짐을 잔뜩 실은 채 물도 먹지 않고 300㎞가 넘도록 모래언덕을 오르내릴 수 있다. 그렇게 결코 주저앉지 않을 것 같지만 지푸라기 한 가닥에도 이렇게 등이 부러지는 법이다.
서양 속담에 ‘마지막 지푸라기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The last straw breaks the camel’s back)’는 말이 있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조심해 다루라는 경고만으로 보기엔 부족하다. 상황이 임계점(critical point)에 가까워지면 지푸라기 하나만으로 낙타의 등뼈가 부러질 수 있으니, 쌓여가는 짚단과 짚가리들을 그 때 그 때 제어하는 일관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크다.
‘임계’라는 서양어는 ‘아슬아슬한’ 상태에 이르러, 모두가 ‘비판과 비평’에 열을 올리게 되는, ‘위독한’ 상황이라는 의미가 모여 있다.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도록 평소에 잘 하라는 뜻이다.
● '大選 오아시스'는 아직도 멀다
5ㆍ31선거를 치른 결과 낙타 한 마리는 등이 부러져 누웠고, 다른 한 마리는 거의 임계상황에 이르렀음에도 표정이 밝다. 눕고 서 있는 모양이 하늘과 땅 차이지만 실제로는 지푸라기 몇 가닥의 문제일 뿐이다. 멀고 험한 사막의 언덕길이 이미 시작됐고, 잘 발달된 후각은 이미 내년 말에 있을 대선 오아시스의 물냄새를 맡고 있겠지만 마음을 급히 가질 필요는 없다.
열린우리당은 고삐잡이부터 교체할 모양이다. 선거 며칠 전 의원총회에서 그들은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혀 국민을 무시했다”거나 “지난 몇 년간 국민들의 고통은 지금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며 반성했지만, 그 때늦음의 책임을 지우고, 지겠다는 것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마지막 지푸라기’의 재앙을 찾느라 한창이다.
주인은 일단 부러진 등뼈를 치료하면서 상처를 살펴보자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지켜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장만하기엔 마음이 통 내키지 않는 듯 하다. 새로운 것에는 잡종의 피가 섞일 수도 있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예전 것처럼 제대로 길들일 자신도 없어 보인다. 이 참에 주인이라는 자리를 털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해 본다.
한나라당은 어안이 벙벙하다. 두 번이나 허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있어 깁스를 하고 나섰고, 짐이 더 무겁고 많음을 알고 있기에 황당하기까지 하다. 사고의 와중에 “대전은요?” “오버하지 마세요!”라고 던진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지난 번 총선을 포함해 ‘3전(顚)4기(起)’했다지만 제 처지를 스스로 알고 있고, 그 동안의 속병이 일부 지병으로 변했음을 남들도 알고 있으니 고민이 없을 수 없다. 치료하고 수술하고 성형하고 정형해야 할 곳 투성이다.
과대포장에 턱없이 높은 가격표가 붙어 버렸으니 어느 정도 품질을 맞출 일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기대이익을 염두에 둔 소유권 다툼은 치열해질 게 뻔하다. 오아시스까지 가려면 짐을 덜어내고 털어내는 것은 물론 등뼈까지 손봐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 명쾌한 요구, 고민할 것이 없다
31일 저녁 투표가 마감되고 1시간이 채 경과되기 전에 결과가 확인된 선거였다. 그리고 불과 하루 만에 그 동안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이쪽 저쪽 모두에서 명쾌하게 정리됐다. 한 가지 주문으로 압축된 분명한 선거였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고민에 빠질 이유가 없다.
국민의 주문대로 하면 그만이다. ‘마지막 지푸라기’는 없다. 설사 있더라도 기껏해야 촉매 역할이다.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지, 알고도 모르는 척 딴청을 부리는지 잠깐의 성찰이면 누구나 잘 알 수 있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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