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즐거울 수 있을까. 입시 준비에 지친 청소년들은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를 흔든다. 취직 시험, 자격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성인도 공부는 싫다. 그런데 공부가 좋다는 사람들이 있다. 공부가 삶이고 새로움이고 즐거움이고 깨달음이란다.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왜 공부가 좋을까.
‘공부의 즐거움’은 우리 시대 공부의 달인 30명의 공부 분투기다. 한국일보 문화기획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의 연재 글을 모은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데 힘을 쏟고 공부에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공부 때문에 직업을 찾았고 나이 들어서도 책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공부에 빠져든 계기는 약간씩 다르다.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는 어릴 적 별명이 ‘약골’이었는데 병석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책 읽기였다. 변산교육공동체의 윤구병씨는, 전쟁 중 자식 여섯을 잃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무지렁이로 키우려던 아버지 때문에 학교를 못 다녔는데 “초등학교는 다녀야 앞가림은 하지 않겠느냐”는 사촌 형의 설득으로 제도권 교육을 받게 됐다.
제타룡 전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중학교 입시에서 1등을 하는 바람에 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김동희 대전지방노동청장은 시골 중학교 입시에서 낙방, 보결로 입학한 뒤 명예회복을 위해 미친 듯 공부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처음에는 무조건 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했고, 공부 못하면 아예 인간도 아니라는 식의 강요 때문에 했다”고 고백했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는 육체노동을 싫어하고 게으른 성격인데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재능을 봉쇄하려는 사회와 싸우기 위해 공부를 했단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생물표본연구실장은 대학원 시절 “여학생이니까 꽃을 공부해보라”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식물분류학을 공부했다.
공부는 결코 쉽지 않았다. 나라도, 개인도 가난한 시절이어서 경제적 어려움이 무엇보다 큰 문제였다. 초등학교 교사 이호철씨는 중학교를 나온 뒤 공장에 다녔는데 그때 교복 입은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유학 시절 밤에 공장에서 일하고 새벽에 잠깐 눈 붙인 뒤 낮에 공부하던 부경생 서울대 명예교수는 당시 공장 컨베이어벨트에 손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교수의 공부는 또 다른 면에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중학교는 재수했고 대학은 삼수해 들어갔다. 동기생 꽁무니만 좇다 터키로 유학했지만 낙제의 위기에 처하자 잠을 자지 않고 500페이지나 되는 책을 수 십번 정독했다. 전상운 전 성신여대 총장은 불모의 학문을 하느라 불안했다.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낮에는 교사로 일하고, 밤에는 과학사를 공부했다. 1950년대 당시 과학사는 학문으로 대접도 못 받고 밥벌이도 보장되지 않았다. 스스로 수도승 같이 살았다는 그는 결국 한국 과학사학의 선구자가 됐다.
공부의 주제가 다르고 동기는 달랐어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공부가 즐겁다는 것이다.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공부하는 하루 하루가 즐겁다”고 한다.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는 책 읽는 것을 목마를 때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에 비유한다. 고전연구가 고미숙은 그래서 이렇게까지 말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이들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게 아니라 즐기는 놀이처럼 하는 게 공부다. 시험 합격이나 자격증 따기가 아니라 새로워지고 깨달음의 자유를 찾고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게 공부다. 그래서 끝내 공부가 즐겁지 않은 범인의 눈에, 이들은 공부 팔자를 타고 난 ‘별난’ 사람들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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