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죽음의 조'는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코트디부아르가 묶인 C조가 아닌 한국, 프랑스, 스위스, 토고가 모인 G조다. 1일(한국시간) 벌어진 평가전에서 프랑스는 티에리 앙리(아스널)와 실뱅 윌토르(리옹)의 득점으로 덴마크에게 2-0 승리를 거뒀고, 스위스는 우승후보 이탈리아와 1-1로 비겼다. 유럽지역예선 10경기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은 스위스는 최근 3차례의 평가전에서 2승1무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스위스는 갈수록 강해지는 느낌이다.
우승후보로 꼽히는 이탈리아와 격돌해 1-1로 비긴 스코어가 첫번째 놀라움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견고한 ‘빗장수비’에 맞서 오히려 경기를 지배한 점이 두 번째 놀라움이다.
월드컵 유럽지역예선에서 7골을 넣어 경계 대상으로 꼽혔던 알렉산더 프라이(렌) 외에 곳곳에서 ‘킬러’들이 떠오르고 있다.
이탈리아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다니엘 기각스(릴)를 주목해야 한다. 원톱 프라이의 뒤를 받치는 ‘처진 스트라이커’로 나선 기각스는 스피드를 앞세운 드리블과 슈팅 능력은 물론 날카로운 공간 침투까지 선보이며 스위스의 공격을 풀어나갔다.
특히 파워와 정확성을 겸비한 중거리슛이 이탈리아전에서 빛났다. 전반 32분 미드필드에서 공을 뺏은 기각스는 거침없는 드리블로 돌파를 시도한 뒤 기습적인 중거리슛을 날려 이탈리아의 골네트를 갈랐다.
동료 공격수인 프라이와 바르네타(레버쿠젠)가 좌우에서 함께 치고 올라가 이탈리아 수비수들이 기각스에게 몰리는 것을 방지할 정도로 빠른 역습에서의 호흡이 척척 들어맞았다.
지난 3월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도 바르네타의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넣어 득점에 성공했던 기각스는 최근 3차례의 평가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기각스의 또 다른 강점은 공격라인의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 후반 17분 하칸 야킨(영보이스)이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에 교체 투입되자 기각스는 왼쪽 날개로 자리를 옮겨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날 현지에서 스위스-이탈리아전을 관전한 대한축구협회의 하재훈 기술위원은 “바르네타-포겔-가바냐스 등으로 이어지는 중앙 미드필더 라인에서 스위스의 공수가 조율 된다. 박지성 이을용 김남일 등 한국의 미드필더들이 강한 압박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앙리 효과'가 입증됐다. 티에리 앙리(아스널)와 루이 사하(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공격의 선봉에 선 프랑스는 다비드 트레제게(유벤투스)와 지브릴 시세(리버풀)가 투톱을 이룬 지난 28일 멕시코전(1-0 승) 때와는 달랐다. 공격력이 확실히 업그레이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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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는 미드필드진이 삐걱대는 와중에도 과감한 개인기로 결승골을 만들어냈고, 탁월한 위치 선정과 돌파로 줄곧 덴마크 수비진을 흔들었다. 전반 12분 윌리 사뇰(바이에른 뮌헨)의 롱패스를 이어받은 사하가 헤딩으로 볼을 떨궈주자 앙리는 가볍게 오른발 슛으로 골문을 갈랐다. 전반 29분에는 플로랑 말루다(리옹)의 크로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했고, 후반 10분에는 단독 드리블에 이은 왼발슛을 날렸다.
서형욱 MBC 해설위원은 "앙리는 팀워크가 살아나지 않을 때도 혼자 힘으로 경기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앙리를 어떻게 막아야 할까. 폭발적인 스피드와 기술을 가진 앙리를 1대1로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앙리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보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앙리는 주로 상대 수비의 중앙과 오른쪽 수비 사이로 움직이는 습관이 있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서형욱 위원은 "최진철과 조원희 사이의 공간을 잘 봉쇄해야 한다"면서 "이을용이나 김남일 등 미드필더들이 적절하게 가담해 순간적인 압박으로 앙리 앞의 공간을 메워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지네딘 지단(레알 마드리드)은 이날도 여전히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단과 교체 투입된 프랑크 리베리(마르세유)는 후반 30분 과감한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내 윌토르의 쐐기골을 만들었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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