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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약탈문화재 환수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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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약탈문화재 환수 이제 시작

입력
2006.06.03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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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의 정밀함과 방대함에 있어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고 수준의 단일역사서이다. 그런데 실록이 일본과 악연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실록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두 차례 치명적인 위기를 겪었으며 이는 자칫 역사 멸실로까지 이어질 뻔했다.

이번에 일본에서 반환되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온갖 수난을 겪었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문화재 약탈의 전형적 사례라 할 만하다. 오대산 사고본은 조직적인 문화재 약탈을 저지른 원흉 중 하나인 초대총독 데라우치에 의해 1913년일본으로 3,600책이 반출되었다.

동경제국대학에 소장되고 있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고 당시 화를 면한 74책이 남아있었으며, 1932년 이중 27책만이 경성제국대학에 이관돼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다. 이후 새로 확인된 중종실록, 성종실록 등 47책이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소장처인 도쿄대가 반환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그간 여러 차례 일본을 항의 방문하고 법정 제소까지 준비해온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의 지속적인노력이 자리잡고 있다.

환수위원회는 협상과정에서 이미 도쿄대의 긍정적 답변을 들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도쿄대가 소장 중인 실록을 서울대 규장각에 기증하는데 양교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93년만에 돌려받는다는 것은 비록 많이 늦어지긴하였으나 당연한 조치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 향후 문화재 반환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번 반환과정을 살펴보면 유의해야 할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먼저 기증이라는 형식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환수위원회는 도쿄대가 한편으로는 협상을 진행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서울대에 기증의사를 타진하는 기만적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환수위원회의 정당한논리와 지속적인 압박에 부담을 느낀 도쿄대가 기증이라는 묘책으로 궁지를벗어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한일협정 체결과정에서'독립 축하금'이라는 미명으로 죄상을 은폐하려 했던 기만적 행태의 재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서울대 당국도 환수위원회에 한마디 문의나 협의도 없이 개교 60주년의 성과로 포장하여 이를 내놓은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서울대는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의 의의를 심각하게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본측의 주도면밀한 계책에 협력한 꼴이 되고 말았다.

불법적인 약탈문화재를 반환받는 것은 피해국의 당연한 권리이다. 따라서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학 간의'기증 수수'는명백한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며, 수용해서는 안 될 해결 방식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와 도쿄대는 남의 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약탈하여 대부분을 영구히 멸실시켜 버린 과거사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즉각반환하는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차제에 우리 정부도 약탈문화재에대한 보다 적극적인 인식 전환을할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약탈문화재에 대한 전면적인 현황조사와 환수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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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종 일 서일대 민족문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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