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강단 있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상당한 유머 감각을 자랑한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종종 엉뚱한 농담으로 취재진들을 웃긴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가장 극명한 차이점을 보이는 것도 언론을 상대하는 태도다. 냉정한 이미지의 히딩크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 때 종종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다 싶으면 바로 ‘멍청한 질문(Stupid Question)’이라는 거친 말로 기자에게 핀잔을 줬다. 선수 기용 등 감독의 재량권을 침범하는 질문이다 싶을 때도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자신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질문이 나올 때면 ‘좋은 질문(Good Question)’을 연발했다. 히딩크 감독은 수사의 대가이기도 하다. 김남일에게 ‘진공 청소기’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반면 아드보카트 감독의 인터뷰 태도는 유연하다 못해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 히딩크 감독과 같은 달변가는 아니지만 곤란한 질문이 나와도 여유를 잃지 않고 농담을 섞어 대답하는 순발력을 보인다.
# "천수-주영 차이점? 나이!"
30일 오전 인터뷰에서 이천수를 노르웨이전에 기용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자 질문이 쏟아졌다. 한 기자가 “이천수를 쉬게 하는 것은 박주영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고 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뭔지 모를 미소를 짓던 아드보카트 감독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당신은 감독을 하는 게 낫겠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히딩크 감독이었다면 “선수 기용을 결정하는 것은 나다. 이미 이천수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라고 말하지 않았나”라고 퉁명스럽게 면박을 줬을 것이다.
1일 오전 오슬로 울레볼스타디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아드보카트 감독의 재치가 빛을 발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노르웨이전에 부상한 박지성 대신 김두현(성남)을 투입하겠다며 두 선수의 차이점을 설명하자 “그렇다면 이천수와 박주영의 차이점을 비교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통역관 박일기씨에게 두 사람의 나이를 물은 후 “이천수가 박주영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차이가 아닌가”라고 취재진을 웃겼다. 그리고는 바로 “박주영은 재능이 많은 선수다. 그가 재능을 발휘하도록 언론도 도와줘야 한다”고 당부하며 난처한 질문을 피해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언론을 상대로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말을 자주한다는 점이다. 히딩크 감독은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정말 세계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이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듯 하다. ‘월드컵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고 수 차례에 걸쳐 주장하더니 노르웨이전을 앞두고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물론 어떻게 놀라게 해주겠다는 부연 설명은 없었다.
오슬로(노르웨이)=김정민 기자 goav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