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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문과·이과 벽 허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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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문과·이과 벽 허물기

입력
2006.06.03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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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대학별 고사를 통해 신입생을 뽑던 시절인 1969년 겨울, 다른 대학을 응시한 친구 하나가 “그 학교는 (수학시험에) 미분 나왔니, 적분 나왔니?”하고 물었다.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때까지도 미분과 적분을 구별하지 못했으니까. 지금도 모른다. 겨우 대학에 들어가 딱 60점으로 교양수학을 뗀 뒤에는 원수같은 수학책을 잡을 일이 없다는 해방감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높이 외쳤다. 문과였던 나는 수학 과학과목의 점수가 늘 낙제점이었지만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자랑스럽지 못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문과 이과의 구분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1주일 전쯤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 개최한 포럼에서 서울대 김영식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직된 문ㆍ이과 구분이 학문의 균형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의견을 다시 제기했다. 그는 주제 발표를 통해 역사적 근거와 실체가 없는 관습인 문ㆍ이과 구분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무지ㆍ편견 부르는 관습적 구분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어떤 문제를 낳는가. 우선, 그 결정이 학생들의 장래 설계에 상당한 제약요인이 된다. 대학 진학 후 전공 공부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깊고 높은 수준의 공부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다른 과의 학문에 대한 무지와 편견도 문제지만, 이를 넘어 배타적 자세와 이분법적 사고를 길러줄 위험성도 크다.

일반인들은 과학기술을 잘 몰라도 무방하며, 과학기술자들은 사회와 문화에 초연하거나 무지한 것이 당연하다는 비뚤어진 인식은 문ㆍ이과 구분이 철저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심리학과 지리학은 문과, 해양학은 이과라는 식의 문ㆍ이과 구분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게 많다.

문과 이과의 구분은 학생들 편에서 살필 경우 개인의 적성과 소질을 빨리 파악해 진로를 결정하도록 해 주기 위한 것이다. 학교나 교육당국으로서는 관리가 쉬워지는 이점이 있다. 학사 운영이나 대입제도 적용, 각종 교육정책 수립에 용이하기 때문에 문과 이과를 구분하는 것은 아주 편의적인 행정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학문은 문과나 이과 중 어느 한 분야에 묶어두기 어려운 복합학문이 많고 학제간(學際間) 연구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한 가지 학문이라 해도 여러 갈래의 접근과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학문풍토는 연구자들에게 학과 간의 벽을 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앞서 말한 김 교수는 서울대 화공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화학물리를 전공한 뒤 과학기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화공과 교수를 했지만 다시 동양사학과 교수가 됐고 현재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한국유학과 자연철학이다. 보기 드물고 특이한 사례다.

그러나 건축공학도가 쓴 소설이 국문과 출신의 작품보다 훨씬 더 서사구조가 치밀하고 화학과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이 문과 출신의 작품보다 감성적으로 뛰어난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인간의 고차원적 지식활동이나 종합적 사고에서는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상호 보완을 넘어 융합시대로

우리는 르네상스적 전인이라는 말을 흔히 써왔다. 괴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런 사람들은 문학가나 화가, 한 가지로만 생각할 수 없는 전인이었다. 동양적 사유체계에서는 문사철(文史哲)을 한 몸에 아우르는 종합적 교양인을 이상적 인간형으로 기려왔고, 문과 이과 과목이 다 들어 있는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 이른바 육예(六藝)를 가르쳐왔다.

그러나 근대사회에 이르러 과학과 문화는 상호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영역으로 나뉘었다. 지금은 그 경계의 파괴가 다시 진행돼 상호 보완을 넘어 상호 융합단계로 들어가고 있을 정도다. 이른바 퓨전시대다.

지금은 문화와 창의성, 종합적 교양 이런 것들이 강조되는 시대다. 그런 상황인데도 문과 이과를 굳이 구분하는 것이 필요할까. 먼 장래를 내다보는 국가 경영과 인재 양성 차원에서 교육당국이 진지하고 심각하게 따져 보아야 할 문제다.

임철순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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