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회삿돈 797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으로 구속 기소된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4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출두하면서 “국민께 죄송하다”고 한 것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재판장인 김동오 부장판사가 진술 기회를 주자 정 회장은 A4 용지 2장에 미리 적어 온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정 회장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를 만들고자 앞만 보고 일하다 보니 뒤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며 “법을 지키지 못한 실책을 저지른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보석 신청을 염두에 둔 듯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잘못을 바로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파란색 바탕에 보라색 세로 줄무늬가 있는 환자용 수의와 흰 운동화를 신고 법정에 나왔다. 정 회장은 고혈압 등을 이유로 지난달 24일부터 서울구치소 내 병사동(환자용 사동)에 수감돼 있다. 정 회장은 김 부장판사가 인정신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묻자 잘못 들은 듯 더듬대며 본적을 말하기도 했다.
정 회장 측 박순성 변호사는 “정 회장은 비자금 조성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나머지 혐의는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부도 상황에서 이뤄진 자구책으로 법률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재진 변호사는 “정 회장의 구속으로 회사가 경영공백 상태에 빠져있고 정 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다”며 보석을 허가해 줄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한편 김 부장판사는 변호인단에게 “정 회장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진정서가 트럭 한두 대 분량으로 법원에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곤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에 변호인들은 “변호사를 통해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지만 진정을 제기하는 쪽에 법원의 이 같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 등 회사 관계자 200명은 재판 시작 30여분 전부터 법정을 가득 메웠다. 검찰은 기소 요지만을 낭독했고 피고인 신문은 다음 기일로 미뤄졌다. 보석 허가 여부는 다음주께 결정될 전망이며 다음 공판은 12일에 열린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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