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결과는 정치권의 빅뱅을 예고한다. 최악의 패배를 당한 우리당은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지도부 사퇴여부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는 등 격랑에 휘말렸다. 한나라당은 느긋하지만 마냥 압승을 즐기기엔 대선주자들의 힘겨루기가 간단치 않다. 당장 7월 전당대회에 누구를 관리형 대표로 세울지를 놓고 대선후보간 쟁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 같은 흐름은 정당의 경계를 넘어 유력한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식의 정계개편 가능성을 재촉할 것이다.
격랑의 중심은 우리당이다. 성난 민심의 쓰나미를 맞아 내부에서조차 “더 이상 우리당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의 충격보다 2007년 대선에 대한 불안감이 훨씬 크다. 당의 진로에 근원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적당한 미봉책으로는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정동영 의장이 당내 중도파와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사퇴결심을 굳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 의장은 31일 선거결과 출구조사를 지켜본 직후 “민심을 겸허하고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의장으로서 크고 작은 모든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동반사퇴의사를 표명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도부가 사퇴한다 해도 현 위기를 극복하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지도부 사퇴, 비대위 출범은 지난해 두 차례의 재보선 실패 등 우리당이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꺼낸 카드였다. 현 지도부가 정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 등 당내 양대계파의 수장들이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이들의 퇴장은 곧바로 리더십 공백으로 이어지게 된다. 유인태 의원 등 중진들이 “지도부 사퇴가 능사가 아니다”고 만류하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현 지도부가 재신임을 받든 비대위 체제로 가든 당내 계파간, 지역간 대립과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143명 의원 모두 “이대로 가면 대선에서 진다”는 위기의식만 같을 뿐 해법은 판이하기 때문이다. 정동영계, 김근태계는 물론 고건 전 총리를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하는 호남과 수도권의 비주류, 독자녹선을 모색하는 영남의 친노직계 등은 저마다 자기 중심적 계산을 하고 있어 공통분모를 찾기가 쉽지않다.
민주당과의 통합문제만 해도 민주당이 응할 지부터 의문이고 계파별로 날이 설 정도로 대립하는 테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설정도 뜨거운 감자다. 거리를 두고, 절연하자는 의견까지 나오지만, 그 이후에 대한 대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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