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가장 크고 깊은 내상을 입은 패군지장(敗軍之將)이다. 그의 앞날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혼돈에 빠진 당을 추스려야 하고, 차기 대선주자의 위상도 다시 세워야 하지만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당장 선거패배 책임론에 어떻게 대응할 지부터 고민이다. 선거 패배의 짐을 혼자 떠안을지, 지도부 전체가 물러날지, 아니면 “지금은 수습할 때”라는 명분으로 현 체제를 유지할지, 의견들이 분분하다.
정 의장은 31일 저녁 선거결과를 보면서 “당 의장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고 이에 따른 크고 작은 책임을 질 것”이라고 사퇴의사를 내비쳤다. 당내 중진들은 ‘대안 부재론’을 들며 사퇴를 만류하고 있지만 그가 눌러 앉기는 어렵다.
정 의장이 물러나든 유임하든 ‘우리당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선거 기간 중 ‘민주개혁세력 대통합론’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김두관 최고위원이 정 의장의 사퇴론을 제기했을 정도로 내분을 잉태하고 있다. 정 의장은 역으로 민주세력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지금의 난국을 돌파할 수도 있다.
대선주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 의장은 더욱 우울하다. 몽골 기병의 기세로 선거전의 선봉에 섰지만 민심이반의 거센 물줄기를 전혀 돌리지 못했다. 워낙 반여정서가 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 의장의 힘이 이를 막을 정도로 크지 않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은 셈이다.
문제는 반전의 묘책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대안론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더욱이 지역기반이 같은 고건 전 총리가 움직이고 있다. 우리당과 민주당의 호남 의원들은 물밑으로 고 전 총리와 교류를 하고 있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막막하다. 정 의장이 2월 전당대회에 나설 때 주변에서는 “선거패배가 예상되는데 나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 때 정 의장은 “피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없지만 혼신을 다한 패배자에는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정 의장은 의연한 패자의 길을 찾기 위해 고통스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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