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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의 Enjoy월드컵] 드라마의 재미, 결론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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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의 Enjoy월드컵] 드라마의 재미, 결론에 있지 않다

입력
2006.06.0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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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월드컵 시즌이 돌아왔다. 사 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시즌으로 인해 온 국민이 지상에서 몇 센티미터씩 들어올려진 듯, 작은 신열과 흥분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좋다, 다 좋다.

사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시즌이고 길어 봤자 한 달 남짓이니, 축제를 즐긴다 해서 생애 큰 부담이 생기거나 건강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때 아니면 언제 우리 같은 소시민이 마음껏 큰소리를 질러볼 것이며, 또 이때 아니면 언제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아이들 눈치 볼 것 없이 빨간 티셔츠를 입어볼 것인가.

그러니 한 달 남짓, 저 먼 유럽에서 펼쳐지는 생경한 드라마에 몰입한다해서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차가 조금 걱정되기도 하지만, 간만에 수험생 시절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할것이다(아아, 수험생들에겐 정말 미안하다. 특히 고3들).

한데, 문제는 드라마를 단순히 드라마로만 여기지는 않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꽤 많다는 사실이다. 사실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커다란 서사의 줄기보다는, 배우들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 대사에 숨어 있다. 그 대사들로 인해 사람들이 울고 웃는 것이지, 어느 순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론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진정,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축구의 재미란, 공격라인에 있다가 갑자기 수비라인에 나타난 박지성의‘느닷없음’에 있는 것이고, 슛을 할 타이밍에 절묘하게 옆으로 내주는 박주영의‘겸손함’에 있는 것이며, 문전으로 크로스를 올리기 전 이리저리 헛다리를 짚어주는 이영표의‘예의바름’에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축구는 충분히 드라마로서의 그 존재목적을 갖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즐겁고 흥분할 수 있으니까.

말인즉슨, 너무 승패에 연연하지 말자는 소리이다. 설혹, 우리가 토고에게 질 수도 있고, 비길 수도있다. 그렇다고 세상다산듯한숨쉬면서 억병으로 취하진 말자는 말이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언제부터 토고를 알았다고, 미리 토고를 미워하는 일도 하지 말자.

토고 또한 드라마고, 대한민국 또한 사실은 드라마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저 우리는 그 속에 있는‘느닷없음’과‘겸손함’과‘예의 바름’만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한드라마에서 보는 일은 흔치 않은일이니. 이제 곧 시즌이다.

** 소설가 이기호(34)씨는 1999년 월간 현대문학에 단편‘버니’로 등단했다. 견고한 서사성과 변화무쌍한 문체로 문단의 주목을 받는 젊은 인기 작가다.“ 애인의 타박을 들으면서도 축구 중계와 온라인 축구게임을 즐기느라 밤을 새기 일쑤”인 축구 마니아이기도 하다. 대표작은 소설집‘최순덕 성령충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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