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육원 거주 제자 손 내밀자 밀고 끌고… 영상대회 상 휩쓸어
학부모들이 몰려와 교사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무릎을 꿇린다. 학생이 교사를, 교사가 교감을 폭행한다. 최근 교육 현장이 붕괴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고개를 흔드는 이들이 있다. 부자(父子) 같은 선생님과 제자, 10년째 불편한 오빠의 다리가 돼주는 동생에게는 적어도 그렇다. 이들의 ‘아름다운 동행’ 이야기가 학교 현장을 훈훈하게 데우고 있다.
“선생님이 없다면 저도 없죠.” 부산영상고 김영광(18ㆍ고2)군의 한마디에 황인환(37) 교사의 어깨가 들썩인다. 김군도 두 볼이 새빨개진다. 각종 영상관련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는 사제는 친 부자처럼 서로를 아낀다.
“선생님, 창업과 영상 분야를 배우고 싶어요. 사실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거든요.” 지난해 입학 후 김군의 이메일을 받은 황 교사는 가슴 한 켠이 뭉클했다.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 놓기가 쉽지 않잖아요. 대견해서 무작정 돕고 싶었죠. 사실 처음에는 재능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너무 잘 해서 더 가르칠 게 없다니까요.”
황 교사의 각별한 지도로 김군은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첫 출품한 창업경진대회에서 우량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최근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영상물 공모전에서 고교생 최초로 장려상을 거머쥐기까지 눈부신 성과를 냈다. 황 교사는 “영광이 덕에 우수지도 교사상까지 받았어요”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김군은 지금도 부산 사하구의 한 보육원에서 살고 있다. 18세가 되면 정착금 100만원을 받아 보육원을 나와야 하는 김군에게 창업은 먼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황 교사는 김군의 상금 저축계좌에 자신의 우수지도교사상 상금까지 얹어 꼬박꼬박 저축 중이다.
김군이 자신의 희망대로 프로덕션을 차려 어렵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날이 기다려 진다.
# 동생이 10여년을 매일처럼 장애 오빠 등·하교 '그림자 수발'
김군의 같은 학교 1년 후배인 박경환(18ㆍ고1)군은 혼자서는 걸을 수 없는 장애인(3급)이다. 4~5세 때 수두를 앓은 후유증이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10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등ㆍ하교를 함께 하는 동급생이자 동생인 계현(17ㆍ고1)양이 있기 때문이다. 박군이 병으로 1년 늦게, 동생과 나란히 입학한 후 계현양은 그림자처럼 오빠를 챙겼다.
이들의 등교시간은 남들의 몇 배가 걸린다. 철제 보조기구를 잡고 한 걸음 떼는 데 수 초씩 걸리는 박군이 20분 걸려 버스정류장까지 가면 계현 양이 오빠가 버스에 타고 보조기구를 싣는 것을 돕는다. 또 버스에서 내려 학교까지 거북이 걸음으로 10분을 걷는다. 이동 수업 때 박군을 챙기는 것도 동생의 몫이다. 비 오는 날이면 두 사람의 팔로 보조기구와 가방, 우산을 다 감당할 수가 없어 택시를 탄다. 하지만 이런 드문 호사조차 어려운 집안 형편에 눈치가 보인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요.” 박군의 어색한 한마디에 계현양은 대뜸 “고교 졸업할 때까지만 도와 줄 거에요. 그 후에는 오빠가 알아서 살 길 찾아가겠죠”라며 괜한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이들은 내심 학교까지 편히 오갈 차만 있다면 소원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 학교 정일빈 교장은 “서로를 아끼는 마음 따뜻한 교사와 학생들이 있으니 교권침해는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저희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교에도 사랑과 배려가 가득했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부산=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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