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영화 ‘영원과 하루’를 보다가 낯선 장면을 발견했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낯설고도 낯선…
죽음을 앞두고 옛추억을 찾아 도시를 헤매던 시인은 신호등 앞에 차를 멈췄다가 무슨 생각엔가 홀연히 빠져든다. 신호는 바뀌지만 그의 생각은 끝나지 않았다. 저녁이 밤이 되고 새벽이 올 때까지 그는 골똘히 생각만 한다. 이런 일이야 한국에서도 일어날 법하다. 낯선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공교롭게 이 차 뒤에 서게 된 차들이 한결같이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조용히 차선을 바꿔서 지나가버리는 장면이다.
서울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면 몇 초만 지체해도 뒷차가 얼른 가라고 경적을 울려대는 이 도시에서 누군가 도로에 차를 세우고 삼매에 든 다면 그 옆을 지나치며 빵빵 울려대지 않는 차는 몇 대나 될까.
●운전중 잠시만 지체해도 "빵빵"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운전자들은 여러 가지 불빛 신호에는 무감각하다. 깜빡이를 켜고 들어가겠다는 신호를 보내도 수십대가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반면 어떤 얌체운전자들은 깜빡이조차 켜지 않고 마구 차선을 바꿔가며 넘나들기도 한다. 서로 신호로 대화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통현장에서도 무서운 약육강식의 쟁탈전이 벌어진다.
버스를 탄다. 승객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한다. 내릴 때가 되면 세워달라는 벨을 눌러두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미리 문 앞에 나와 서있어야 한다.
나와 서 있지 않으면 분명 벨을 눌렀는데도 정류장을 그냥 통과한다. 뒤늦게 세워달라고 하면 큰소리로 비난을 들어야 할 지도 모른다. 한번은 버스가 완전히 멈춰선 후 내릴 경우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까 재본 적이 있다. 가장 뒷자리에 앉았을 때에도 5초 정도였다.
버스정류장이 40개라면 모두 200초, 4분 이내이다. 만일 나이드신 어르신이 계서서 정류장마다 좀더 늦어진다 해도 10분 정도만 더 투자하면 된다. 그런데 그 시간을 서로가 참아주지 못해서 모두가 미리 일어서서 흔들거리는 불편을 매번 감수해야 한다.
몇 년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뒷사람이 다가오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여닫이 문을 밀고 들어가버려 튕겨나온 문이 뒷사람한테 부딪치게 하는 경우, 담배 피운다고 건물 입구를 막아서서는 지나다니는 사람한테 길을 비켜주지 않는 경우, 길에다 침을 뱉는 경우, 휴지를 아무 데나 버리는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큰소리로 휴대전화를 하는 경우, 극장에서 식당에서 아이들을 마구 떠들게 버려두는 경우 등등 한국사회는 무신경한 사람들로 넘쳐 난다.
그러고 보니 선거운동 기간 내내 후보를 홍보하는 방송차는 어떻게 소음기준을 넘어서까지 방송을 하며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지, 투표를 독려하는 선거방송 차는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한 때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트는 자동차가 사람의 귀로는 참아내기 힘든 소음을 뿌리며 거리를 돌아다닌 적도 있다.
모두 내 주장은 옳으니까 나머지는 참아내야 한다는 무신경에서 나온 행동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 외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가 만들어낸 무신경이다. 내가 중요하면 남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오는 무신경이다.
●사회 곳곳 증오와 공허감 넘쳐
그러면서 한국사회는 새로운 목표를 계속 만들어낸다. 정부나 개인이나 목표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쓴다. 그러나 목표에만 외골수로 매달리고 나머지는 무신경한 결과 계속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다. 그리고는 그 문제를 없애기 위해 또 목표를 만든다.
그래서 지금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자녀 잘 키우려고 조기유학시키다 가정이 깨지고 소득은 늘었는데도 남들은 더 버는 것 같아 안달이 난다.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예산의 낭비요, 사회 곳곳에서는 증오와 공허감만이 넘쳐 난다. 도대체 이게 뭔가.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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