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의 지방선거 예상답안은 ‘여당 참패’였다. 그래서 선거참여 요청을 거절했던 것이다. 선거 패배 후 여당이 분열하고 그 여파로 정계재편의 흐름이 생기면 그 때 움직이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 예상대로 반(反) 한나라당 세력을 아우르는 민주개혁세력의 통합론이 여권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선거 참패로 기세가 꺾였기 때문에 민주세력 통합론자들은 고 전 총리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그가 움직이기만 하면 작든 크든 정계개편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돌다리도 두드리는 신중한 스타일이다. 지금 정당을 만들 수도 있고 특정 정당에 입당할 수도 있지만, 이후 뚜렷한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다. 더욱이 내년 대선까지는 1년 반이나 남아있다. 여권이 내분을 겪는 와중에 휘말릴 경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당과 민주당 연합에 고 전 총리가 합류하는 3자 연대론이나 양당의 ‘고건 세력’을 규합한 신당 창당은 당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고 전 총리가 마냥 관전자에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회주의적 처신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측근들은 “비 정치권 인사를 중심으로 한 중도개혁세력을 규합하면서 느슨한 형태의 조직체 결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가칭 ‘국민희망연대’가 대안으로 모색된다. 고 전 총리의 메시지를 국민에 전하고 지지자를 결집하는 전진 기지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움직이되 휘말리지 않고 거리를 두되 중심에 서는 선문답 같은 행보가 지금 그가 선택한 노선인 듯 하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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