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31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국민의 대표가 선출되는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선거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선거과정과 선거 이후를 면밀히 살펴봄으로서 민주주의가 확고히 뿌리를 내린 국가와 겉모습만 민주주의인 국가를 구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기간에만 유권자가 주인 풍토
유권자들의 투표에 의해 대표가 선출되는 대의민주제 국가에서 선거기간 중 후보자들의 유권자 접촉은 빈번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에게 임기 동안 어떻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제시하며 지지를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선거기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유권자 접촉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민주주의의 성숙도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유권자인 국민들이 진정한 주인의 역할과 기능을 하는 민주적 국가에서는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당선자들의 대민 접촉은 상당한 수준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겉모습만 민주적인 국가에서는 선거기간 국민들에게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던 후보자들의 모습은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즉 선거기간 중 유권자에게 한 표를 부탁하던 겸허함과 아쉬운 마음은 투표함이 열리고 개표가 끝남과 동시에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른바 선거기간 중에만 유권자의 영향력과 표심의 효력이 있고, 당선자가 확정되면 그 시점부터 유권자들은 당선자에게 영향을 미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정치권력이나 정책적 결정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선거 이전의 힘없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정치학자들은 ‘선거민주주의’라고 명명하였다.
선거기간에만 유권자가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가 ‘잠깐’ 유효하고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유권자는 당선자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도 이제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축척하였고 여러 차례의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수차례의 선거기간 중 한 표를 부탁하였던 후보자들이 당선 후 당선사례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거는 것 이외에 임기 중 유권자들을 접촉하며 그들의 의견이나 애로사항을 국정이나 지방정치에 반영하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을 보거나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러니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선거가 끝난 후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강행하는 모습을 보며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더욱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혹자들은 민주화 이후 선거에 의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선거기간에만 국민이 주인이고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국민을 주인의 자리로부터 밀어내는 한국의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실상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유권자인 국민들의 어려운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관심과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오만함으로 위임받은 권력을 자신이나 소속정당의 이해관계만을 위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표자로서 위임받은 책임과 권력을 마치 백지수표를 사용하듯 하는 한국정치의 풍토는 민주화 이후에도 별다른 개선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선자와 소속정당 행보 주시를
이번 5ㆍ31 지방선거에서도 많은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지역발전을 위한 청사진들을 제시하였다. 그들의 약속을 믿고 유권자들은 자신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던져 대표자들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개표가 끝난 오늘 아침, 대한민국 지방정치의 주도권은 여전히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있는지 아니면 투표함의 개봉과 함께 당선자와 그 소속정당들에게 넘어간 것인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이 지방정치의 주인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다음 선거까지 또 4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서경교ㆍ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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