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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노근리' 두번 죽인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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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노근리' 두번 죽인 美

입력
2006.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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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일의 인권 국가라는 나라에서 할 짓입니까? 미국은 ‘노근리 사람들’을 두 번 죽였습니다.”

31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학살 현장을 찾은 노근리미군양민학살사건대책위 정은용(83) 위원장은 “수백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미국이 진상 조사마저 은폐ㆍ왜곡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진실을 날조한 증거가 미국 공식문서를 통해 나왔는데도 미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UN차원에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미 정부의 난민 사살 방침이 들어있는 당시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의 서한이 발견됐다는 보도는 노근리 피해자와 유족에겐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그동안 상부 명령에 따라 발포했다는 미 참전 용사들의 증언과 문건이 쏟아져 나왔다.

AP통신의 폭로(1999년 9월)로 노근리 사건이 전 세계에 알려진 지 6년여. 그러나 이 시간은 노근리 사람들에겐 또 다른 고통의 나날이었다. 미 정부는 AP 보도 후 전면 조사에 나서 2001년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결론은 ‘명령없이 이뤄진 우발적 사건’이었다.

조사 당시 노근리대책위 등이 제시한 문건이나 증언은 철저히 무시됐다. 이번에도 ‘새로운 사실이 없다’고 발뺌했다. 앞서 미 정부는 ‘불행한 비극’이라는 유감 표명과 함께 추모비 건립과 장학 사업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난 5년여 동안 추진된 게 없다. 더욱이 최근 지난 해 11월 이라크 주둔 미 해병대에 의해 자행된 하디티 양민 학살사건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미국이 진실을 그대로 털어놓을 것 같지 않다.

“진상규명에 대한 일말의 희망으로 버텨온 50년이 한스럽기만 합니다.” 사건 당시 할머니와 형, 동생을 한꺼번에 잃은 양해찬(65)씨의 한숨이 귓전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한덕동 사회부 차장대우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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