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준만 칼럼] '월드컵 열광'을 바판하려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준만 칼럼] '월드컵 열광'을 바판하려면

입력
2006.05.31 00:11
0 0

지난 5월 11일에 방영된 MBC TV의 ‘월드컵 D-30 특집_투혼, 한국축구 124년의 기록’과 5월 27일에 방영된 KBS1 TV의 ‘꿈의 시작_취리히, 1954’는 ‘그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 류의 복고(復古)풍 재미를 선사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한국인에게 과거의 참패 기록은 수치라기보다는 훌쩍 커버린 한국 축구의 발전상을 새삼 음미해보는 뿌듯한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대표팀은 1948년 런던올림픽 때 스웨덴에 0-12, 1954년 스위스월드컵 때 헝가리에 0-9, 터키에 0-7, 1964년 동경올림픽 때 브라질에 0-6, 아랍공화국에 0-10으로 참패했다. 한국대표팀은 그런 놀라운(?) 기록을 딛고 일어서 ‘세계 4강’에까지 진출했으니 이 어찌 감읍할 일이 아니랴.

● 한국 유권자 기이한 쏠림현상

그런 감읍은 범국민적 열광으로까지 발전해 ‘축구는 축구일 뿐’이라고 믿거나 주장하는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축구 다큐멘터리가 바로 이 문제를 정면 대응하는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 그 시도는 선거 때마다 극과 극을 치닫는 한국 유권자들의 기이한 쏠림 현상도 규명하는 부수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것 같지만, 실은 유권자들의 ‘쏠림 놀이’에 정치인들이 놀아나는 형국이다. 이전에 나타난 유권자들의 쏠림을 ‘위대한 민심’이라고 극찬했던 정치인들이 이젠 새로운 쏠림에 대해 ‘싹쓸이만큼은 막아달라’는 읍소를 하고 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바보로 만드는가? 바로 유권자들이다.

집단으로서의 유권자는 영원한 면책특권을 누린다. 그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건 그건 천심(天心)이 된다. 책임 추궁을 당하지도 않으며 일관성 검증도 피해 간다. 무조건 민심은 위대할 뿐이다. 이들이 즐기는 게임의 이름은 ‘공중에 띄웠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리기’다.

한국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최대 동력은 반감(反感)이다. 균형은 없다. 반감의 대상을 응징하는 데에 목숨을 건다. 그 반사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공중에 뜨게 된다. 자기들 잘 나서 공중에 뜬 줄 안다. 그들의 간이 부으면 어쩔 것인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책임은 없다. 그냥 띄워놓고 뒤돌아 서서 제 갈 길 가면 그뿐이다. 그래 놓고 땅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면 ‘그럴 줄 몰랐다’고 오히려 호통을 친다. 이게 바로 쏠림 현상의 비극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쏠림 현상을 비판하지만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정신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쏠림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쏠림을 낳는 구조를 공격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비판을 하는 자신도 그 구조를 고착시키는 일원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한국은 쏠림을 위해 기획된 나라였다.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초강력 중앙집권체제가 그걸 잘 말해준다. 조선시대 때부터 그랬다. 다산 정약용은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가지 말고 버티라”는 유언을 남겼다. “멀리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는 경고도 했다.

● 중앙집중 구조 바꿔야 풀릴 문제

정치와 경제만 그런 게 아니다. 미디어와 대학을 보라. 인구가 5,000만명에 육박하는 나라에서 한 도시에 그 핵심 기능이 다 몰려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한국 말고는 없다. 아파트 거주율도 세계 최고다. 전염과 동조가 극대화되게끔 기획돼 있는 것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도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이는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구조다. 이걸 무시하고 서양의 눈으로 한국사회를 보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쏠림 구조를 바꿀 뜻이 없다면, 월드컵 열광을 비판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즐기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