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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남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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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남원의 사랑

입력
2006.05.3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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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비란 여자가 생각난다. 일본 사람인데 우리말을 아주 잘했다. 살짝 전라도 억양이 섞인 교양 있는 말씨였다. 언뜻, 전라도 지방의 한 도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거기 살다가, 대학에 진학하며 상경한 지 십여 년 된 전문직 여성을 그녀는 연상시켰다. 외국인이 우리말을, 그것도 사투리가 밴 우리말을 잘 하는 건 참 신기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마비를 딱 한 번, 세 시간쯤밖에 못 봤다. 한 친구가 우리문학을 전공한 영국인 아가씨를 초대한 자리에서였는데, 그녀가 다음날 귀국할 마비를 데려왔다. 마비는 도자기에 관계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둘 다 프랑스 마니아라고 했다. 딸 이름을 ‘나의 삶’이란 뜻의 프랑스어 ‘마비’라고 지을 정도로.

마비는 몇 년 전 남원 광한루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고 했다. 그 총각도 혼자 여행 온 일본 사람이었다. 일본인 청춘남녀가 광한루에서 마주친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다. 춘향아씨와 이도령도 광한루에서 처음 눈이 맞았다지? 오늘 같은 단옷날에 말이다. 남원하고도 광한루는 사랑의 공간인가 보다. 무릇 풋정을 무르익게 하나보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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