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번영은 우리 부모 세대의 희생으로 이룩한 것이죠.”
한국외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실라 컨웨이(54) 교수가 ‘하늘을 나는 푸른 자전거’라는 책을 펴냈다. 부제목이 ‘어머니,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역사’이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고도성장과 개발독재 등 지난 100여년 간 우리 부모 세대가 겪었던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체험담이다.
컨웨이 교수가 2000년에 영문학부 4학년을 대상으로 강의한 영어작문 수업에서 나온 에세이 중 14편을 골라 각각의 완성된 이야기로 다듬어 엮었다.
외국인 교수가 학생 부모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을 펴내다니, 대체 무슨 까닭일까. 컨웨이 교수는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요즘 학생들은 부모 세대의 희생과 노력을 잘 알지 못한다”며 “학생들이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도 1970년 일자리를 찾아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 자메이카, 바하마, 캐나다, 한국 등을 전전해온 ‘부모 세대’이다.
당시 그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부모님을 인터뷰해 그간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영어로 에세이를 써 보라”는 독특한 과제를 받았다. 취업 준비로 바쁜 4학년생들에게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이런 과제가 반가울 리 없다. “대체 과제를 내면 안되겠느냐”며 불평을 늘어놓는 학생도 있었다.
컨웨이 교수는 “하지만 막상 과제 제출일이 다가오자 학생들의 태도가 바뀌더라”며 “학기가 끝난 뒤에도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번씩 찾아와 지도를 요청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과제를 위해 부모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과제물 이상의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이야기 중 몇 가지는 이후에도 몇 년이 더 지나서야 겨우 완성됐다. 6년 전 시작한 작업이 이제서야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책에는 가부장적 가족제도로 고통 받는 한국 여성의 삶, 전쟁과 이산의 아픔, 군사독재 시절의 암울한 시대상을 회상하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컨웨이 교수는 식민지배와 잦은 외침 등 한국과 닮은 점이 많은 아일랜드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국과 아일랜드의 ‘한(恨)’을 비교한 글을 실었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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