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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혁명시대/ <중> 뒤바뀐 우선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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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혁명시대/ <중> 뒤바뀐 우선순위

입력
2006.05.3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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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역삼1동 GS타워 15층 LG디자인경영센터. 전세계 500여명의 LG전자 디자이너들이 가까운 미래에 선보일 제품들을 미리 디자인해 최고 경영진에 전시하는 디자인성과 발표회가 열렸다. 각 본부별 심사를 거쳐 출품된 작품을 살펴보던 김쌍수 부회장은 ‘판타지’라는 이름표가 붙은 19인치 모니터 앞에서 멈췄다.

이 제품은 받침대와 전체 외관 등을 마치 미술 작품처럼 디자인해 LCD 모니터가 아니라 하나의 실내 인테리어 장식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특히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접목, 신비한 분위기를 냈다. 김 부회장은 당초 3년 뒤에 제품으로 내 놓으려던 계획을 바꿔 즉시 제품화할 것을 지시했고 “제품 개발 과정과 생산, 마케팅, 홍보 등을 모두 디자인에 맞춰 진행하라”고 강조했다.

이후 6개월여 동안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와 각 사업부는 ‘빛과 사람’이라는 판타지 모니터의 디자인 컨셉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움직였다. 먼저 케이블 박스에 전원선과 컴퓨터 신호선을 연결, 깔끔한 처리가 가능한 ‘원 케이블’(One Cable) 구조를 적용하고 어두운 배경 화면에서 더욱 선명하고 생생한 화질을 감상할 수 있도록 LG전자의 독자 회로 기술을 채택, 세계 최대 명암비(2,000대1)를 구현했다. 신기함을 느낀 고객들이 모니터를 자꾸 껐다 켜 본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응답 속도(1000분의 4초)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개선했다.

드디어 18일 LG전자는 판타지 모니터를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 판매 보름도 안 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모니터는 하루 300~400대가 팔리며,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100~200대 수준이던 LG전자의 평상시 모니터 판매량의 2배를 넘는데다 역대 모니터 판매량 가운데 최고로 많은 것이다.

박시범 LG전자 디지털디스플레이미디어(DDM) 마케팅팀장(상무)은 “정보기술(IT) 제품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 놓겠다는 각오로 제품화를 진행했다”며 “기술과 생산, 소재 등의 부문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해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 성공의 비결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업의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디자이너의 의견을 존중하고 제품 개발 과정도 디자인에 맞춰 진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에서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제품 개발 과정 등에 디자인이 깊이 개입하고 있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는 이러한 ‘디자인 우선주의’(디자인 퍼스트)로 잇따라 대박을 터뜨린 경우다. 그는 2002년 레인콤과 함께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 프리즘’을 추진하며 먼저 디자인을 한 뒤 모든 제조와 생산을 이 디자인에 맞춰 진행함으로써 글로벌 히트작을 만들었다. 당시 그는 엔지니어들이 1㎜만 늘려달라고 호소해도 자신의 디자인을 관철시켰다.

이에 앞서 여행용 골프가방 ‘프로텍’과 1993년 미국의 ‘비즈니스위크’와 미국산업디자인협회가 주관하는 디자인상 ‘IDEA’에서 금상을 받은 동양매직의 휴대용 가스버너 ‘랍스터’ 등도 모두 디자인 우선주의 아래 김 대표가 만든 제품이다.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인 다이하츠도 ‘화려하지 않고 친근한 스포츠카’라는 컨셉의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구현하고 이에 맞춰 기술이나 부품 등을 개발, 경차 ‘코펜’ 등의 히트작을 내 놓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최고경영자(CEO)가 디자이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애플의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제품 개발시 디자인팀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관련 부서 등의 요구로 디자인이 변질되지 않도록 ‘디자인 수호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홍사윤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실장은 “디자인 혁명 시대에선 이익을 최우선시하거나 고객 대신 자신들의 기술이 중심이 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더 이상 발을 붙이기가 힘들어졌다”고 강조했다. 고객을 중심에 두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내는 것은 물론 디자인을 최우선시하는 디지인 우선주의 경영을 펴야만 디자인 혁명 시대에 생존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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