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디르크 발브레커(Dirk Walbrecker)가 지어서 원제가 뮌하우젠(Munchausen) 남작의 모험인 이 책에서 주인공은 늪에 빠진 자신의 머리칼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당겨 탈출을 한다. 나중에 심지어는 바다에 빠져서는 자신의 가죽구두에 달린 손잡이(bootstrap)를 당겨서 몸을 끌어올린다.
자신의 머리칼을 잡아당긴다거나, 가죽구두의 손잡이를 잡아당긴다고 해서 몸이 위로 솟구쳐 올라간다는 이야기는 물론 허풍이다. 자신이 혼자서 스스로 머리칼을 잡아당기면 머리만 아플 뿐이고,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발만 아플 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가 생기는 일이 있다. 취직을 하여 경력을 쌓는 일이 한 예이다. 언뜻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취직을 하려면 경력이 필요하고, 경력을 쌓으려면 취직을 해야 하니 결국은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에 버금가는 일이 된다. 회사를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회사를 세우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고 돈이 많으려면 회사를 세워서 성공을 해야 한다.
컴퓨터를 켜려면 운영체제를 읽어와서 실행해야 한다. 운영체제를 실행하려면 운영체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컴퓨터를 처음 시동하는 과정을 부트스트래핑(bootstrappingㆍ손잡이 당기기) 또는 줄여서 부팅(booting)이라고 한다.
부팅이 허풍이 아닌 실제가 되려면 애초에 운영체제가 없이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실제로 컴퓨터에는 그렇게 실행가능한 매우 작은 프로그램이 존재해서 자신보다 약간 더 큰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그 프로그램은 또 다시 조금 더 큰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을 반복해서 결국에는 커다란 운영체제를 시동한다.
그래서 부트스트래핑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일의 크기와 복잡성을 늘려간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접근이 부트스트래핑을 허풍이 아닌 실제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사실상 국내에서 중단되었다. 첨단이라는 낱말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대한민국에서 유난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기대를 모았던 최첨단 기술이 허풍이었다는 사실에서 온 충격의 여파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대부분의 첨단기술은 부트스트래핑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초기술이 없으면 결국은 허풍으로 그치고 만다는 이야기다.
그 부트스트래핑에 들어간 돈이 대단한 액수라 한다. 반면에 기초기술을 연구하는 기술자들은 굶어야 할 정도의 홀대를 받는 현실에서, 지금까지 정부와 민간의 과학ㆍ기술에 대한 관심은 과연 점진적으로 첨단화하는 부팅이었는지, 허풍에 가까운 성과를 기대하는 부팅이었는지 궁금하다.
연세대 토목공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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