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이라는 묘한 울림의 에스프리를 담은 책이 나왔다.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인 문학기자 박래부씨가 우리 시대의 좋은 시인 소설가 6명- 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 의 집을 찾아가, 집과 방과 책과 책상을, 거기에 녹아 든 햇살과 바람과 음악과 그림을, 또 그들의 시와 소설을 이야기한 책이다.
그들의 빛나는 문학이 탄생한 공간과 거기에 투영된 작가 자신의 내면이 아스라한 거리를 두고 그들의 문학과 만나는 지점들. 필자는 그 지점의 표정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격조 있는 문체로 담아냈고, 출판저널 기자 박신우씨는 사진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안희원씨는 맛깔스러운 그림으로 빈 곳을 채워주고 있다.
처음 들른 ‘방’인, 소설가 이문열씨의 경기 이천 ‘부악문원’을 두고 그는 “그 자체가 평생 추구해온 탈이념적 복고주의적 이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혹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디세이에 다름 아닐 것”이라고 썼다. 그 정신적 ‘오디세이’의 서재는, 성채를 방불케 하는 규모와 공간 벽면을 가득 채운 저서에도 불구하고, 자기 과시나 예술적 취향에는 거의 돈을 들이지 않았다. 철저히 ‘기능적’이다. “검소한, 또는 무미건조해 보이는 취향 고백을 듣지 않더라도, 그의 소설 역시 예술지향적이기보다 철학지향적이다. 그러나 이는 그가 문학에만 전력투구하는 유형의 작가라는 것, 목표와 주제에 치열하다는 것을 말해준다.”(29쪽)
이렇듯 그가 안내하는 작가의 방은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10여년 전 ‘문학기행’시절의 행로에서 문학이 배태된 거시 공간을 살폈다면, 이번 책에서 그는 작가들의 미시공간, 그리고 내면의 공간을 살핀다.
자유로운 인문주의자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젊은 소설가이자 교수인 김영하씨의 연구실, ‘꾸밈없는 착함이 거처’하는 강은교 시인의 소박하고도 정갈한 방, 작은 도서관쯤은 될 법한 장서를 갖추고 책이 자신의 오락이라고 말하는 소설가 공지영씨의 ‘방’.
시골 청년을 시인으로, 지식인으로 성장시킨 ‘조강지처 같은 책’들을 둘 데 없어 학교와 고향집, 전주의 아파트에 나눠 쌓아두고 있는 김용택 시인의 ‘방’을 나서며 그는, “자연 전체를 하나의 큰 서재로 여기는 시인은 드물지만 행복하다”(231쪽)고 썼고, ‘집 전체가 정갈한 카페’를 연상케 하는 소설가 신경숙씨의 집필공간 옆 책장에서는 ‘문학전집’을 꺼내보기도 한다. 작가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큰오빠가 선물한, 소설 ‘외딴방’에 그 과정을 쓰기도 했던 그 오래된 책이다.
필자는 작가들의 서재에서 귀하고 반가운 책이나 사상가를 만나면 못내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단상을 적는다. ‘외딴방’ 이야기 끝에 필자의 대학시절 야학교사 경험을 이야기하는 등 기억을 더듬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의 방과 그들의 문학 이야기일 뿐 아니라, 기사로 문학텍스트를 심심찮게 압도했던 문학기자(필자)의 삶과 문학에 대한 열애의 은근한 추억담 같기도 하다.(서해문집, 1만900원)
책에 실린 사진들은 30일부터 내달 6일까지 종로구 사간동 ‘유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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