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ㆍ사고의 보도기준은 무엇인가. 국내 언론들이 지구촌 재앙을 다루는 양태를 보면 의아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수백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재앙이 외신면이나 사회면에 간단히 처리되는가 하면,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사건ㆍ사고인데도 한국인이 관련돼 있으면 대서특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후진국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로 지구촌 재앙을 외면하거나 단신 취급하면서 한국인이 희생자에 포함됐거나 위험에 처했다는 이유만으로 지면을 할애하고 특파원을 보내는 등 호들갑을 떠는 모양은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이런 보도 관행은 거의 철칙처럼 지켜지는 듯하다.
■ 지난해 10월 파키스탄에서 지진으로 7만 3,000여명이 사망했을 때 우리 언론들은 지구촌 뉴스의 하나로 소개했을 뿐, 현장의 참상을 통해 구호의 손길을 호소하는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04년 12월 남아시아를 휩쓴 쓰나미로 22만여명이 희생되는 대참사 때도 한국 관광객이나 교민 희생자가 많지 않았다면 특파원을 보내고 많은 지면을 할애했을까 의문스럽다.
특파된 기자나 카메라는 참사현장보다는 한국인 희생자와 관련된 뉴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각종 테러와 홍수 태풍 지진 등이 일어나는데도 한국인이 관련돼 있지 않으면 관심이 없다는 식이다.
■ 지난 주말 인도네시아 자바 주에서 일어난 강진으로 사망자만 5,000여명에 육박하고 부상자가 2만여명, 이재민이 2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폐허 더미 속에서 아이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부모, 간이 수용시설에 누운 환자들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 병 등 외신이 전하는 영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우리 언론들은 참사소식을 전하면서도 한국 관광객이나 교민 희생자가 없다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런 고질적 관행은 한국인의 희생 여부가 관심이지, 재앙 자체는 뒷전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십상이다.
■ 정부가 19명의 긴급구호팀을 파견하고 10만달러 상당의 긴급의약품을 공수했다는 뉴스는 더 낯을 뜨겁게 한다. 말레이시아 태국 등 이웃나라는 물론 호주 뉴질랜드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수백만달러를 지원하고 수십명에서 수백명의 구호팀을 보내는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마음 씀씀이가 이 정도인가 싶다. 아무리 세계화를 외쳐봐야 지구촌 불행을 함께 나누는 온정의 세계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물 안 개구리를 면할 길 없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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