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에서 완구점을 하던 A씨는 3년 전만 해도 괜찮은 자영업자에 속했다. 30평 가량의 완구점은 초등학교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늘 손님이 북적거렸고, 월 수입도 300만~400만원 선으로 가족을 먹여 살릴 만큼은 됐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인근에 대형 할인점이 2개 생기면서 A씨의 인생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할인점에는 A씨의 매장보다 몇 십 배 큰 어린이 전용 매장을 갖춘데다 가격도 저렴해 경쟁에서 도무지 이겨낼 수가 없었다. 할인점이 생긴 지 6개월 만에 매출이 3분의 1 이하로 뚝 떨어졌다.
오기가 발동한 A씨는 매장 규모를 늘려 할인점과 맞붙기로 했다. 마침 인근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자영업자 4명과 함께 상호보증을 서고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이들이 빌린 은행 돈은 모두 3억원 가량. 불행의 화근은 여기서 시작됐다.
물건 가격을 낮추고 매장규모도 늘렸지만 한번 발길을 돌린 손님을 다시 붙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호보증을 선 업자들이 줄도산하고 달아나자 은행에서는 A씨에게 연대보증책임을 물어 매장과 집을 압류했고, A씨는 급기야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5년전 경기 분당에 유명 의류브랜드 가맹점을 차린 B씨도 3년전 대형 아울렛이 인근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이 아울렛에 같은 브랜드의 매장이 입점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가격차이는 없었지만 아울렛측이 다양한 포인트 제도를 통해 사실상 추가할인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꾸준한 고객관리를 해왔지만 단골 고객들이 아울렛으로 발길을 돌렸고, 결국 매장 임대비용을 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외환위기 이후 급속도로 늘어난 자영업자들이 대형 할인점이라는 공룡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무너지고 있다. 96년 전국에 70만5,000개에 달하던 영세 소매상은 2004년 62만5,000개로 줄었으나 할인점은 이 기간 동안 28개에서 274개로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할인점이 연내에 350개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고, 자영업 점포는 더욱 감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허인교 전북 프랜차이즈 협회 회장은 “75가지 채식 식단으로 채식뷔페에 성공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컨설팅사는 자문비용만으로 수천만원을 요구했다”며 “정부지원도 찾을 수 없어 직접 전북 프랜차이즈 협회를 설립했지만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조직과 자본을 무기로 세력확장에 나선 할인점에 영세하기 그지 없는 자영업자들이 대항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창업 아이템도 마땅치 않다. 피부미용, 유기농산품가게 등이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시장이 한정돼있고, 편의점, 문구점, 슈퍼마켓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했다.
강남 소상공인 지원센터 황미애 상담팀장은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소자본 자영업자를 근로현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가능성이 있는 프랜차이즈 업체를 양성화시켜 경쟁력이 있는 소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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